『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대런 애쓰모글루, 제임스 A. 로빈슨

『총, 균, 쇠』와 『문명의 붕괴』를 통해서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지지자가 된 나로서는 이번에 읽은 책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읽고는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바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가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주장을 제대로 저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위의 두권의 책을 포함하여 그의 저서를 통해서, 인류와 각 문명의 흥망성쇠는 이미 생태학적으로 얼마나 유리한 곳에 터를 잡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즉, 생태학적 관점에서 인류와 문명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반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의 저자인 대런 애쓰모글루Daron Acemoglu 교수와 제임스 로빈슨James A. Robinson 교수는 문명의 흥망성쇠는 바로 정치를 제대로 하느냐의 문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위에서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를 저격한다라고까지 표현하긴 하였으나, 정확히 말하자면, 두 교수는 생태학적인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를 지지하지만, 이를 인류와 문명에게까지 확대해석한 것은 잘못되었으며, 정치제도 자체가 직접적인 원인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본문에서 직접적으로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를 지목하고 있다.

그전까지 생태학적인 관점에서의 인간사를 정말 흥미롭게 기술한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책을 읽으며 열광했던 나였지만,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꽤나 명확하고 논리적이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은 후에는 다시 생각이 바뀌어 버린다. 역사적 또는 생태학적인 배경지식이 부족하다보니 이 사람 말을 들으면 이 사람 말이 맞는 것 같고, 저 사람 말을 들으면 저 사람 말이 맞는 것 같다. 굳이 두 주장을 비교하져면 정치제도가 맞는 것 같다.

『총, 균, 쇠』나 『문명의 붕괴』만큼이나 내용이 방대하고 (E북으로 읽었지만) 책 두께도 두꺼운 편이라, 핵심내용에 하이라이트를 하면서 읽기는 했다. 그럼에도 물리적인 책의 내용의 방대함과 함께 책의 건조한 문체는 책을 완독하는데 꽤나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런데, 책을 몇 줄로 요약하는 것은 생각보다 쉬웠다. 책의 플롯(?)이 한 가지 주장을 펼쳐 놓고 수만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는 형식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관통하는 단 한 가지 주장은 인류와 문명의 흥망성쇠는 정치제도에 있으며, 좋은 정치제도란 포용적정치제도이고 나쁜 정치제도란 착취적 정치제도라는 것이다. 포용적이냐 착취적이냐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얼마나 민주적이냐이다. 포용적인 정치, 즉, 민주적이고 사유재산이 잘 보장되며, 공정한 게임을 할 수 있는 정부하에서는 소위 말하는 "창조적 파괴"가 쉽게 일어나며 이로 인한 혁신이 사회를 보다 빠르게 발전적으로 이끌어 나간다. 반면 착취적인 정치제도하에서는 이러한 혁신없이 발전을 할 수 밖에 없기에 어느 수준까지는 (때때로 더 효율적으로) 발전하기는 하지만, 그 이상으로 진전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왜 모든 정부나 지도자, 또는 엘리트가 포용적인 정치를 하지 않느냐라는 궁금증이 생길 수 밖에 없는데, 본질적으로 지도층은 포용적인 정치제도로 인해 혁신이 일어나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러한 혁신으로 인하여 권력을 빼앗길 까 늘 두려워한다. 따라서, 포용적인 정치제도를 펼치기 위해서는 지배층의 권력이 공고하여 이러한 두려움에 떨 필요가 없을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이는 다시말하면 정치적으로 중앙집권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이다. 여러 가지 예를 들었지만, 한국인이라 그런지 박정희 정권의 사례가 가장 와닿는다. 박정희 정권은 독재를 하기는 했지만, 워낙에 권력 기반이 탄탄했기 때문에 별 두려움 없이 포용적인 정책을 펼칠 수 있었다. 뒤집어 말하면, 현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퇴보하고 있는 듯한 모양새가 펼쳐지고 있는 것은 권력층의 권력기반이 탄탄하지 않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해도 될 듯하다.

포용적 정치제도가 시행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결국 피지배층이 얼마나 기득권층과 맞서 싸울 용기가 있느냐에 달려 있다. 흔히들 민주주의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데, 이 역시 일맥상통한다.포용적 정치제도 또한 기득권에 대항하여 피를 흘려야 얻을 수 있는 혜택이라는 뜻이다.

이 책을 통해 난 정치에 대해서 한단계 더 높은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할 때는 그저 위에서 언급한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저서들을 읽을 때와 같이 문명의 흥망성쇠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했기 때문인데, 읽고 나서 얻게된 깨달음은 오히려 정치는 무엇이고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원하는 바는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있는 통찰력을 얻게 된 것이다. 물론, 나같은 컴퓨터 프로그래머 따위가 이 책 한권 읽는다고 정치를 얼마나 알게 되겠냐마는, 그나마 바닥이었던 정치적 식견이 조금이라도 향상되었다는 점에서 스스로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 책을 지인들에게 추천해줄 생각은 없는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참 재미가 없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저서들은 방대한 양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이야기가 화려하게 진행되는 맛이 있는 반면,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는 참 담백하고 무미건조하게 씌여진 책이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