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 폭탄 만들기』 리처드 로즈

이 책을 언제 시작했는지조차 가물가물 할 정도로 오랫동안 부여잡고 있었던 책이다. 『원자 폭탄 만들기』라는 제목은 내용을 알기 전까지는 독자에 따라 원자 폭탄 만드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 내용은 원자 폭탄이 탄생하게된 기나긴(?) 물리학 중심의 역사를 매우매우 담백하고 무미건조한 문체로 기술하고 있다. 원래 이렇게 무미건조한 문체였는지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물리학에 관심이 없다면 이 책은 정말 지루하기 짝이 없는 책이 분명하다. 물론, 물리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이 책을 선택할 가능성 자체가 매우 희박하겠지만...

두 권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1권에서는 주로 물리학에서 원자라는 개념이 발견된 과정부터의 비교적 고전적인 시대를 기술하고 있고, 2권에서는 본격적으로 우라늄이 등장하면서 원자폭탄 제조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특히, 2권이 후반부로 가면 일본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난 이후의 참혹함같은 것을 묘사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아마도 이 부분이 이 책의 절정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 참혹한 상황마저 담백하게 묘사를 하는데, 문체는 그대로지만 내용이 물리학 이론이나 역사에서 갑자기 전쟁의 참혹상으로 급변경되어 버리는 통해 약간의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종종 원자 폭탄이라는 무시무시한 무기를 만든 과학자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면 그 당시의 상황을 좀 이해할 수 있다. 많은 과학기술들이 전쟁을 통해서 발전하곤 하는데, 원자폭탄 또한 그런 케이스 중에 하나이다. 당시에 이미 원자, 방사선물질, 핵폭발 등의 개념은 꽤 보편적인 것이 되었고, 2차세계대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독일과 미국 중에서 누가 먼저 원자 폭탄을 개발하느냐에 따라서 전쟁의 양상이 변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원자 폭탄 개발이 완료될 시점에는 이미 연합국 쪽으로 전세가 많이 기울어지긴 했지만, (무의미한 역사에서의 가정이긴 하지만) 만약 독일이 먼저 원자 폭탄 개발에 성공했다면 전쟁이 어떻게 변하게 될지는 모르는 상황이었다는 뜻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바라보자면 이 원자 폭탄의 투하는 많은 미국 병사들의 목숨을 구하는 일이었다. 이미 원자 폭탄 투하 전에도 무수한 공중폭격으로 일본의 대도시들은 대부분 너덜너덜해진 상태였지만, 그래도 전의를 상실하지 않은 일본때문에 결국 지상군을 투입하느냐의 결정이 남아 있었던 것이다. 100만에 가까운 미군병사의 생명을 구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원자 폭탄을 투하하던 지상군을 투입하든 일본쪽의 사상자는 군/민간인 모두 엄청났을 것이다. 다만, 이 폭탄 투하로 인하여 일본인은 전범이면서도 피해자라는 이상한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이 좀 아이러니할 뿐이다.

결론적으로, 난 이를 개발한 과학자들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가 일본인이 아니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결국 만들어질 재앙이 아니었을까? 아마도 인간의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본능이 만들어낸 필연이 아닐까 생각된다.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오히려 지금까지 핵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아슬아슬한 평화(?)가 유지되고 있는 점이 더 놀랍다.

워낙 오래동안 읽어서 그런가 독후감도 살짝 횡설수설하는 것같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