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6년을 함께했던 E-420, 큰 상처를 입다

6년전이던가 두번째 유럽여행(?)을 가기 전에 추억을 퀄리티 있는 카메라로 남겨 보고자 구입했던 DSLR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올림푸스 E-420이었는데, 당시에 역사상 가장 가벼운 DSLR이었고, 그래서 여행을 갔다온 후에도 일상적으로 카메라를 늘 가방에 넣고 다녔다. 무거운 카메라 사서 장롱 속에 쳐박아 두고 일년에 한두번 사용하는 것보다 얼마나 경제적인가! 그럼에도 나같이 늘 DSLR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딱히 사진을 자주 찍는 것은 아니면서도 가지고 다니다 보면 찍을 일이 생길 것이라며 가지고 다닌다.

안들고 다닌 시절도 있었다. 스마트폰의 카메라 기능이 급격히 향상되면서 일상적인 스냅사진은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한 시대가 온 것이다. 내 경우에는 아이폰5를 가지고 다니게 되면서 이 녀석을 멀리하게 되었던 것같다. 아이폰5의 카메라 화질은 굳이 DSLR을 가지고 다녀야 하나라는 회의감을 들게 만들 정도였다. 게다가 사진을 찍는 시대에서 공유하는 시대로 바뀌어 버리자 내 DSLR은 골동품으로 전락하는 듯했다.

그러다가 Eye-Fi라는 무선전송이 가능한 메모리카드를 사용하게 되면서 사진을 공유하는 시대에도 대응을 할 수 있게 되자 이 녀석을 다시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아무리 아이폰5가 좋은 화질의 사진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하더라도 얕은 심도의 사진을 만드는 것은 여전히 전문적인 카메라의 영역이었다. 또한, 내가 그렇게 밝은 렌즈를 장착하고 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히 세팅된 DSLR로 찍은 음식사진은 나름의 운치가 있었다.

그렇게 다시 전성기를 맞이한 내 E-420의 액정이 처참하게 깨져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 오늘 오전이다. 며칠 동안 꺼낸 적이 없으니 요 며칠 사이에 깨진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며칠 전 아버지 생신잔치 때 음식점 한 곳에다가 가방을 몰아서 놔두었는데, 누군가가 거기에 기대었을 때 가방 안에 미니삼각대가 지속적으로 충격을 준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다른이들의 DSLR 장비 교체 주기와 비교하면 6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짧지만은 않기에 내년에 노트북 할부가 다 끝나면 요즘 유행하는 미러리스 카메라를 하나 장만할까라는 생각을 하긴 했다. 그래서, 몇 달만 잘 버텨주길 바랬는데, 이렇게 이제 놔줘야할 시간이 되어 버렸다. 난 이상하게 오랫동안 사용했던 물건에 대한 애착같은 것이 있어서 그냥 새로 바꾸는 것이 나을 때도 어떻게든 기존 것을 활용할 방도를 궁리하는 궁상을 떨곤 한다. 이 녀석도 외출할 때마다 들고 다녔던 만큼 생활기스 가득한 녀석임에도 정이 많이 들어서인지 깨진 액정 화면이 애처롭게 느껴져서 마음이 짠하다.

사진이 찍히긴 하는데... 그래도 새로 장만해야겠지?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