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의원

몇 주 전에 상영예정작을 보면서 미리 볼 영화 리스트를 만들어 두곤 하는데, 상의원은 이 리스트에는 없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 왕비로 박신혜가 나온다길래... 박신혜는 예전에 "미남이시네요"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참 귀욤귀욤하다는 생각을 했는데 요즘 살을 뺀 이후에는 부쩍 이뻐져서 좋아라 하고 있다. 하지만, 박신혜의 쪽찐 머리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는 결론에... 그래도 울 때는 참 이쁘다.

물론, 박신혜가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극장을 찾은 것은 아니었다. 한석규와 고수라는 걸출한 배우들 역시 영화를 뒤늦게 선택하게된 이유였다. 적어도 배우들의 연기력 때문에 몰입이 안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내가 역사에 대한 지식이 워낙에 짧은 관계로 정확한 시대적 배경을 알 수는 없고, 감독 역시 독자들이 정확한 시대적 배경에 관심을 두지 않길 바라는 듯하다. 그저 조선시대의 어느 왕이겠거니 하고 보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같다. 형에게 왕위를 물려받은 왕이 조선시대에 누가 있지? 아무튼 공식 역할은 그저 "왕"이지 어떤 왕이라고 칭하지는 않는다.

상의원이란 궁궐에서 옷을 만드는 부서(?)인 듯하다. 그리고, 김돌석은 이 부서의 책임자로 새로운 왕이 즉위하면서 대규모의 인적쇄신이 있었지만 김돌석은 살아 남았다. 그리고, 머지않아 양반이 되리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정진한다.

궁을 위해서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옷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만드는 녀석이 하나 있다. 공진이라는 자인데, 주로 기방에 거처를 두고 기녀들의 옷을 만들지만 소문이 나고 부터는 높은 대신들의 옷이나 양반집 규수들의 옷도 만들며 짭빨한 수익을 거두고 있다. 그런데, 이 공진이라는 자가 궁궐에서 왕과 중전마마의 옷을 만들면서 돌석과의 경쟁이 시작된다.

전반적으로 영화는 돌석과 공진의 경쟁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둘은 때론 경쟁을 하고 때론 의지를 하지만, 역시 경쟁하는 경우가 더 많다. 더 정확히 말하면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 오며 양반으로의 입신양명을 꿈꾸는 돌석이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공진의 재능을 시기하여 갈등을 초래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관객이 영화를 부담스럽지 않게 느끼도록 설정한 많은 개그요소가 초반에 배치되어 있고, 그렇게 관객들을 안심시켜놓고 후반부로 갈수록 갈등을 심화시켜서 관객들로 하여금 카타르시스를 느끼도록 하는 것이 아마도 제작진의 의도인 듯하다. 후반부는 확실히 위에서 언급한 순수한 천재의 재능과 이를 시기하는 범재의 타락을 긴장감 있게 연출하고 있고, 난 이 연출이 참 좋았다. 과연 내가 돌석이라면 이 천진난만한 천재의 앞길을 창창히 열어줄 수 있을 만큼 성인군자같은 행동을 보일 수 있을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니 스스로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과연 돌석과 같이 매몰찰 수 있을 것인가라고 자문해보니 그것 또한 쉽지 않을 것같다. 그래서 이렇게 범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나보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한 패션영화라는 장르에 들어갈 법 하지만, 시기와 질투라는 보통 인간이 흔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실질적인 이 영화의 소재라는 점에서 꽤 잘 만든 영화라고 평하고 싶다. 쓸데 없이 무리수를 두는 개그 요소는 그래서 눈감아 줄 수 있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