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탈출』 앵거스 디턴

일반적으로 보수진영의 경제학자가 집필한 책이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는 별로 없었다. 한국에서 주로 교과서로 이용되는 맨큐의 경제학 정도가 얼마 안되는 예외적인 케이스가 아닐까 한다. 이번에 읽게된 『위대한 탈출』은 경제학적으로 보수쪽에 속하는 앵거스 디턴Angus Deaton 교수가 쓴 책인데, "예외적인 케이스"의 범주에 넣기에는 그다지 인기리에 팔리는 책은 아닌 듯하다.

이 책을 결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첫번째는 소득불평등은 나쁜 것이 아니다라는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일각에서 주장하고 있는 소득불평등의 심화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출판사에서는 이러한 내용 때문인지 최근 화려하게 등장한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교수의 『21세기 자본』과 대척점에 이르는 책이라며 마케팅을 하고 있는 듯하다.

우선 첫번째 결론인 소득불평등은 나쁜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에 앞서서 앵거스 디턴 교수는 소득불평등의 주요 원인은 세계화에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고 있는데, 그 단적인 예로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들이 처음에는 해당 국가에서만 인기를 끌다가 세계화가 되면서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음으로써 부의 집중현상이 배가되었음을 들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리고, 특히 영미권 국가에서 세계화에 성공한 사례가 많았기에 기업의 최고경영자의 소득이 극도로 상승한 것은 영어권 국가에 국한되는 현상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즉, 커버해야할 시장이 그만큼 넓기 때문에 세계화된 영미권 글로벌 기업의 CEO는 많은 연봉을 받는 것이 합당하다는 뜻이다. 또한 소득의 불평등이 심화되었음에도 절대적인 소득이 올라갔고, 이에 따라 인류의 수명도 늘어났고 더 건강해졌음을 근거로 상대적 불평등을 조명할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에 의미를 둘 필요가 있음을 피력했다. 이에 대한 예로 든 사실들 중에 흥미로운 것은 19세기 유럽남성의 평균신장이 166.7cm 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두번째 결론인 소득불평등의 심화라는 현상이 근거가 부족한 주장이라는 의견에 대해서, 일반적으로 소득불평등을 언급할 때 제시하는 구매력기준 GDP같은 경우에는 명목 GDP에 비해서 좀 더 정확한 지표이기는 하지만, 이런 구매력 기준 GDP조차 오차범위가 25%에 달하며, 경제구조가 비슷한 부유국들과의 비교에서는 유용할 수 있으나, 경제구조가 판이한 국가간의 비교에 사용되기에는 이 엄청난 오차때문에 쓸모가 없다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실제로 이런 25%의 오차를 감안하면, 중국 경제는 미국 경제의 56~94% 사이 어딘가에 있다는, 말그대로 쓸모없는 결론만 도출할 수 있을 뿐이다. 게다가, 중국에서 나오는 데이터들을 과연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문제점도 제시하고 있다. 즉, 일각에서 제시하는 빈곤율이나 소득불균형은 상당히 과장되어 있다라는 뜻이 되겠다. 토마 피케티 교수가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에게 줄기차게 얻어 터진 이유도 바로 이 근거로 제시하기엔 불완전한 데이터를 조작해서 그럴듯하게 포장을 했기 때문이다.

위의 두 가지 주장 외에도 국가간 원조에 대해서 실랄한 비판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원조가 오히려 빈곤국의 독재자에게 더 강한 힘을 제공하여 해당국의 국민들은 더 심각한 독재의 희생양이 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다시 말하자면, 원조가 효과를 보려면 해당국가에 제대로된 정부를 세워야 하는데, 제대로된 정부가 세워 지기만 한다면 해당국가는 원조 없이도 충분히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에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우리의 의무감에서 비롯된 빗나간 동정이 바로 원조의 본질인 듯하다.

예외적인 케이스가 있기는 하겠으나, 난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와 원조에 관한 이야기에 대체적으로 동의를 하는 편이다. 그러나, 이 책은 추천하기에는 워낙 무미건조하여 재미가 없다. 폴 크루그만같은 진보적 경제학자들은 책을 참 재미있게 쓰는데, 보수쪽 경제학자들은 글쓰는 재주는 별로 없는 듯하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