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스나이퍼

수많은 남자들이 처음 소총을 잡을 때는 스나이퍼가 되고 싶은 꿈을 꾸지만 그중에 극소수의 사람만이 저격수로 선택받게 된다. 스나이퍼라는 말은 남자들을 흥분시킬 수 있는 건전한(?) 단어 중에 하나이다.

헐리우드 영화가 국내에서 예전만큼의 위력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 제목에 아메리카/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흥행에 그리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인데, 국내 관객들은 이미 미국의 우월성이나 애국심 등을 보여주는 영화에 반감을 갖은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마블코믹스의 캡틴 아메리카 정도가 그나마 아메리카라는 단어를 허용해주는 마지노선이 아닐까 한다.

영화제목이 아메리칸 스나이퍼란다. 반감을 갖게 만드는 단어가 남자의 로망을 자극하는 단어를 수식하고 있다. 난 스나이퍼라는 단어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영화를 보기로 결정을 했다. 하지만, 아메리칸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반감을 우려한 극장들은 이 영화 상영을 상당히 제한적으로 하고 있는 듯하다. 시간이 맞는 상영관을 찾는 것이 다소 까다로웠고, 대부분 규모가 작은 상영관이 배정되었다.

내가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보기로 결정한 또다른 이유는 바로 감독이 클린트 이스트우드Clint Eastwood라는 점이었는데, 난 그가 감독으로서 연출한 영화들을 알지 못했지만, 그의 배우로서의 이력을 고려하면 이 영화만은 정말 잘 만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난 이 영화가 관객의 선호도와 상관없이 잘 만들어진 영화라고 생각한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연상시키는 씬 뿐만 아니라 그렇지 않은 씬들도 만족스러웠다.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크리스 카일Chris Kyle이라는 이라크전에서 엄청난 활약을 한 미군의 전설적 저격수의 생애를 다룬 영화이다. 당연히 영화는 크리스 카일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그가 전쟁에서 어떻게 활약하는지, 그리고 민간인으로 돌아와 어떻게 전쟁스트레스를 극복하는 지, 그리고, 그 가족들은 어떻게 그의 공백과 복귀에 적응하는 지 등이 잘 버무려져 있다. "잘 버무려져 있다"라는 의미는 긴장이 끈을 풀었다 놓았다를 잘 했다라는 뜻이다.

영화가 전쟁이 얼마나 참혹한지 등에 대해서 지나치게 강조하지는 않는다. 어찌보면 꽤나 담담한 느낌으로 한 저격수가 전쟁이라는 혼탁한 진흙탕에 어떻게 적응하는지, 어떻게 진흙탕에서 동료들을 구원해 주는지 등을 묘사해 놓는다. 그 담담함 속에서 흥미진진한 스릴을 느낄 수 있는 것이 이 영화의 묘미다. 일부러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스릴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군인과 남편이라는 역할갈등 속에서 군인의 길을 선택한 카일, 그래서 아내에게 많은 점수를 잃곤 하지만, 결국 그의 아내는 전쟁으로 인한 정신병으로 고생하는 그의 곁에 남아 민간인으로서의 삶을 지탱케 도와준다. 그런면에서 역시 헐리우드 영화의 기본 컨셉인 가족애가 빠지지 않고 영화에 녹아 있다.

난 그의 생애를 잘 몰랐기에 영화의 마지막까지 참 임펙트가 있었는데, 알고 보는 사람은 그 또한 나름의 예상된 카타르시스를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찾기 번거로운 상영관 억지로 찾아가서 본 보람이 있는 영화였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