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 마키나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에 대한 이야기는 스크린을 통해서던 스크린 밖에서든 참 자주 다루어진 식상한 소재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소재가 끊임없이 스크린으로 옮겨지는 것은 그만큼 관객들이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에 대한 꾸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인공지능에 더해서 로봇에게도 감정이라는 것이 있다는 설정도 흔히 볼 수 있다. 이번 엑스 마키나에서는 로봇이 인공지능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감정, 감정을 넘어서서 욕구를 가지고 있다.

(아마도 구글을 묘사하고 있는 듯한) 어느 인터넷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프로그래머에게 은둔하고 지내는 회장님 저택에 일주일간 방문할 수 있는 이벤트에 당첨되는 행운이 찾아오고,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인터넷 회사는 검색엔진 분야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렇게 확보된 점유율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방대한 데이터를 이용하여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 에이바(알리시아 비칸데르Alicia Vikander)를 비밀리에 개발한다. 이벤트에 당첨된 프로그래머는 일종의 튜링 테스트를 진행하며 에이바의 인공지능에 대한 평가를 내리게 된다. 문제는 테스트를 하다가 로봇과 사랑에 빠졌다는 것!

과연 인간은 로봇을 사랑할 수 있는가! 반대로 로봇은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가! 아마도 영화는 관객들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듯 보인다. 이 회장님이 좀 변태스러운 면이 있는지 인공지능 로봇을 죄다 여자 로봇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 중 한 로봇은 비서 또는 하녀같이 회장님 시중을 든다. 노골적으로 묘사되지는 않았지만 시중드는 것 이상을 하기도 하는 듯 보인다. 또한, 인공지능을 넘어서서 로봇이 인간과 같은 욕망이나 감정을 갖도록 만들어져 있다. 위에서 언급한 사랑 이야기는 그래서 나온 것이다.

주인공인 그 프로그래머는 에이바에게 사랑에 빠지면서 불편한 감정을 느낀다. 아마도 대부분의 인간이 그 상황에서 크게 다르지 않은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내 정신상태가 정상이 맞는지, 또는 도덕적으로 그리고 인류보편적으로 이런 관계가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갑작스러운 혼란을 받아 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에이바의 얼굴은 정말 이쁘다. 그리고 프로그래머를 유혹(?)하기 위해 여성스러운 가발을 쓰고 하늘하늘한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다. 당황한 이 프로그래머는 회장에게 이 로봇이 인간을 유혹하게도 프로그램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이에 회장은 그 이상의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대답한다.

여자들이 과연 신체적인 매력을 지닌 로봇의 유혹에 빠져들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남기는 하지만, 아마 남자들은 로봇이 충분히 여성으로써의 매력을 지니고 있다면 넘어가지 않을까 생각된다. 특정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단백질 인형을 가지고 노는 남자들이 있는 걸 보면 아마 인공지능이 있는 로봇은 그것보다 더 훌륭한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인공지능 로봇에 인격이 부여되도록, 더 나아가 인간의 본능까지 비슷하게 프로그래밍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의문이 든다. 그저 인간이 시키는대로만 하는 종같은 스타일의 로봇만 만드는 것이 더 유익하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하는데, 이 영화의 회장은 워낙에 독특한 스타일이라 이런 유형의 본능을 가진 인공지능 로봇 만드는 일을 즐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세상에서 이와 비슷한 취미를 가진 천재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긴다면 어찌될 것인가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니 참 아찔해진다.

영화가 끝난 후, 현생인류의 멸종은 아마도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에 의해서일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힘겹게 상영관 찾아다닌 보람이 있는 영화다. 점점 더 독특해지는 내 영화취향에 비추어 이런 일은 계속 일어날 것 같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