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디지 큐브

PC, 특히 데스크탑이라고 불리는 PC의 형태는 점점 메인보드에 대부분의 기능을 통합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네트워크 카드가 통합되었고, 사운드카드가 통합되었으며, 그래픽카드 또한 보드에 통합된 지 오래다. 오늘은 이 사운드카드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자 한다.

온보드된 사운드를 위해서 일반적으로 리얼텍사에서 만든 칩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 회사의 로고를 따라서 꽃게 사운드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렇게 메인보드에 통합된 사운드카드는 꽤 유용하다. 당연히, 보드에 확장카드를 꼽지 않아도 PC에 스피커만 꼽으면 바로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나도 그런 추세에 따라 따로 장착했던 사운드카드를 더 이상 꼽지 않은 것이 오래 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바로 음질이 안좋아 진 것이다.

PC 내에는 여러 가지 전기적인 신호가 흐르고, 이런 신호들은 좋은 소리를 듣기엔 너무 많은 노이즈가 발생한다. 화면을 급작스럽게 변경한다거나 랜카드에서 많은 양의 데이터가 오고 간다거나, 심지어 하드디스크를 읽는 것으로도 노이즈가 발생하고 이 노이즈는 소리와 섞여 스피커로 전달된다. 최근에는 이런 노이즈를 억제하려는 노력으로 인하여 온보드 사운드도 그럭저럭 발전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역시 한계가 존재한다.

피시파이PC-FI라는 말이 있다. 하이파이를 PC에서 즐기는 행위를 통칭하는 듯하다. 피시파이가 좀 더 대중화되면서 이런 온보드 사운드 기능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점차 외장 DAC라는 것이 대중화되기 시작한다. DAC라는 것은 Digital Analog Converter의 준말인데, 온보드 사운드이건 메인보드에 장착하는 사운드카드건에 모두 DAC의 역할을 한다. 이것을 (주로 USB를 통해서) 외부로 빼내어 PC내부의 전기적 노이즈로부터 방해받지 않도록 만든 것이 외장 DAC이다. 이번에 구매한 오디오트랙사의 프로디지 큐브ProDigi Cube도 바로 이런 외장DAC 중에 하나이다.

내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스피커는 정말 유물이라는 표현을 써야 적절한 수준일 것 같은데, 세론Ceron F3000이라는 모델로 2000년대 초에 구매하여 계속 사용해 왔던 것이다. 당시 PC를 사면 번들로 끼워주는 만원짜리 스피커와 비교하면 난 몇 만원 더 투자하여 이걸 구매했었다. 여기에 흔히 2.1체널이라는 걸 만들기 위해 서브우퍼를 사용하는데, 역시 유물이라 칭할 수 있는 오디오트랙사의 WO-2000이라는 녀석이다. 이 녀석 역시 비슷한 시기에 들여서 15년동안 써왔다. 즉, 스피커는 그저 최악만 면한 상태라는 것을 미리 밝히는 것이다. WO-2000이라는 녀석 이후에 몇 번 사운드카드를 구매한 적은 있는데, 기억에서 거의 잊혀져 있던 오디오트랙이라는 회사가 다시 내 인생에 등장한 것은 음... 뭐랄까... 그래, 감회가 새롭다. 이 표현밖에 없는 것같다.

프로디지 큐브를 장착한 후에 음악을 들어 보았다. 먼저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콘체르토 1번의 1악장. 특별히 이 곡이 테스트에 좋아서 선택한 것은 아니며, 평소에도 가장 많이 듣는 클래식 곡이라 비교하기에 적절할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온보드 내장 사운드에서는 피아노 건반소리가 그냥 PC에서 흉내내주는 느낌이었다면, 프로디지 큐브를 거쳐서 나오는 소리는 정말 방안에서 피아노가 연주되고 있는 것과 유사한 느낌이 들었다. 완전히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말그대로 "유사한 느낌"이 든다. 또한 멀티탭 교체 및 전선 정리후에 메마르게 들렸던 콘트라베이스 소리가 좀더 풍성해진 느낌이라고 밝힌바가 있는데, 프로디지 큐브를 거친 후에는 전반적인 주파수에서 모두 건조한 소리가 맑게 들리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참고로, 건조하다는 것은 악기 특유의 울림이 생략되고 단조로운 음만 들린다는 표현이다.

제이레빗J Rabbit의 Happy Things라는 노래를 들어 보았다. 확실히 고음이 청아해졌다. 특히, 여자 보컬이 모니터 정중앙에 서서 나를 위해 노래를 불러 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프로디지 큐브가 본격적인 PC-FI를 위한 엄청난 외장DAC라고 불리우기는 좀 무리고, 주로 헤드폰 앰프가 내장되고 마이크 입력이 가능한 외장DAC를 원하는 사람이 선택할 수 있는 저렴한 제품임에도 이런 차이를 보여준다는 것이 좀 놀랍다. 지금 소리에 너무 만족하여 지금 구매해서 마루에 임시로 설치해 놓은 캔스톤사의 LX-6000 마테호른 스피커는 며칠 더 거실에 둘 예정이다. 조금만 더 이 변화를 즐기고 나서 또다른 변화를 즐기련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