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

007 시리즈에 대한 향수를 가진 사람이 여전히 존재할지라도 이미 007 시리즈는 그 영향력이 소멸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냉전시대의 스파이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이미 탈냉전시대에 접어든 작금의 상황에서 먹혀들기가 힘들기 때문일게다. 러시아가 다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걸 가지고 다시 신냉전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귀를 기울일 필요는 없어 보인다.

007의 시대는 흘러 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수요원은 관객들의 흥미를 끌어 모으는 묘한 매력이 있는 소재이다.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는 바로 이런 시대의 요구를 반영한 영화이다. 다만, 소련/러시아같은 냉전시대의 전통적 적대국을 상대하는 것이 아닌 인류 평화를 위해하는 똘아이를 상대한다. 007의 느끼함에 질려버린 관객들을 위해서 아주 담백하고 건전(?)하지만 영국식 위트는 잊지 않았다. 심각한 소재를 이용하면서도 결코 관객이 무거움을 느끼지 않게 배려한다.

난 킹스맨을 참 재미있게 보았다. 007 이후에도 특수요원을 다루었던 영화들은 많았지만, 킹스맨 만큼 재미있게 본 영화는 별로 기억에 없는 듯하다. 맷 데이먼이 열연한 본 시리즈 정도가 기억날 뿐이다. 하지만, 본 시리즈와 킹스맨이 관객에게 즐거움을 주는 방법은 꽤 다르게 느껴진다. 본 시리즈가 겉과 속이 모두 진지하다면, 킹스맨은 겉은 진지하지만 알맹이는 유머로 가득차 있다. 킹스맨 요원들이 입은 더블수트 안에 익살 덩어리들이 감추어져 있다가 적절한 타이밍에 요긴할 때 쓰여진다.

난 영화에 대해서 극찬을 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신랄한 비판을 하지도 않기에 이 영화를 그저 적당히 가벼워서 흥미로웠던 영화라고 평하고 싶은데, 꼭 그런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오면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어떤 여자 관객은 콜린 퍼스Colin Firth의 팬인데 교회씬에서 너무 망가져 안타까웠다라고 평을 한다. 난 이 영화의 두번째로 재미있는 장면이 바로 교회 난투극이었는데... 물론, 가장 재미있었던 장면은 펍에서의 격투씬이다. 브리티쉬 악센트로 Manners... maketh... man... 을 읊으며 문을 걸어 잠그고 긴장을 고조시키는 배경음이 나오는 그 장면... 그래, 예고편에서도 나오는 그 장면! 난 이 장면을 평생 잊지 못할 것같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