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테이션 게임

세상에는 업적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는 사람이 있는 반면, 업적에 비해 그리 알려지지도 않고 대접도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아마도 현대식 컴퓨터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튜링머신을 만든 앨런 튜링Alan Turing은 그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는 군사 기밀이라는 이유 때문에, 또한 당시에 허용되지 않았던 동성애자였기 때문에 저평가된 천재였다.

이미테이션 게임은 위에서 소개한 앨런 튜링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이다.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누군가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는 생각보다 스펙타클하지도 않고 다소 지루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그걸로 먹고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꼭 봐야할 것 같은 의무감에 극장을 찾았다. 물론, 내가 좋아라 하는 두 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Benedict Cumberbatc와 키이라 나이틀리Keira Knightley도 주요한 동기였다.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앨런 튜링을 연기하였는데, 그는 정말 재미없는 영화에도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게 만드는 엄청난 능력을 지는 듯하다. 그는 사회성이 상당히 결여되어 있는 천재 앨런 튜링을 너무 적나라하게 연기하였다. 자신없는 말투로 더듬으며 말하는 앨런 튜링의 연기는 관객들을 정말 앨런 튜링과 대화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였다. 실제로 답답함을 느꼈다는 뜻이다.

흔히 천재는 자신의 특정 분야에는 엄청난 재능을 발휘하지만 다른 분야에는 오히려 일반인들보다 더 무능함을 보여주곤 하는데, 앨런 튜링도 아마 그런 류의 천재인 듯하다. 영화에선 그렇게 묘사되고 있다. 언론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줄 아는 천재들도 있고, 우리같은 일반적인 대중들은 그런 천재들을 좋아하지만, 앨런 튜링은 그런 능력까지 가지고 있지는 못했다.

윤리적인 잣대에서 그의 여러 가지 결정들이 논란의 대상에 오를 수도 있을지언정 그는 전쟁의 조기종식이라는 측면에서 분명한 업적을 남겼음이 분명하다. 맨하탄 프로젝트 만큼이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 그가 미친 영향력은 생각보다 크다. 어쩌면 그가 아니었으면 대한민국의 독립 또한 2년정도 미뤄졌을 지도...

이 글이 이미테이션 게임이라는 영화의 리뷰인지, 앨런 튜링 전기에 대한 리뷰인지 모호해 지고 있긴 한데, 이것은 모두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열연을 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극장을 찾은 것은 컴퓨터공학 전공자로서의 호기심과 의무감 때문이었다면, 극장을 나올 때의 감정상태는 어느 인정받지 못한 천재의 불운한 삶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로 인하여 발전된 문명의 이기를 누리고 사는 사람들 중 하나로서의 감사함 등이 복합적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