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너츠같은 손목쿠션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살아왔던 난 손목터널증후군으로 고생을 한 경험이 있는데, 손목쿠션을 사용한 이후로 상당히 완화되었기에 그 이후로도 계속 손목쿠션을 사용해 왔다. 처음엔 불편했지만 이제는 많이 익숙해진 상태이다. 여전히 안하고 마우스질 하는 것이 더 편하긴 하지만...

마음에 드는 손목쿠션을 찾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 왔고, 몇년 전부터는 보온용으로 손목에 감는 제품을 손목밑에 받혀 두고 사용해 왔으나 너무 낡아 버려서 새로운 걸 하나 장만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검색질을 했으나, 손목터널증후군이 대체적으로 여성에게 많이 발병하는 질환인지라 손목쿠션이나 비슷한 이름으로 판매되고 있는 제품들은 너무나 소녀감성이어서 아저씨인 내 입장에선 그다지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가 찾은 것이 바로 이 던킨도너츠같이 생긴 손목쿠션이었다.

뭐 이것도 아저씨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귀욤귀욤한 동물캐릭터들을 형상화한 것들보다는 덜 소녀스럽기도 하거니와 꽤나 먹음직스럽게 생겨서 내가 이걸 손목에 쓰려고 산건지 그냥 식욕이 당긴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결제버튼을 눌러 버렸다. 그다지 비싼 품목도 아닌지라 마음에 안들면 그냥 쟁여 놓았다가 쓸모없으면 버리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택배가 도착한 후에 좀 바빠서 며칠이 지나서야 이렇게 꺼내어 사용해 본다. 포장을 풀고 보니 이건 진짜 먹음직 스러운 도너츠같이 생겨가지고 막 먹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정말 던킨도너츠에 가면 진열되어 있는 도너츠같이 생겼다. 게다가 윗쪽에 데코레이셔된 초코시럽같은 녀석이 반짝반짝 빛나기도 하거니와 냄새를 맡아 보면 초코시럽향이 난다. 막 핧아보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느라 잠시 힘들었다.

보기에는 참 먹음직스럽게 생겼는데, 이 제품을 처음 의도한 손목쿠션의 목적으로 사용하는데는 두 가지 단점이 존재한다. 첫째는 윗쪽에 데코레이션 되어 있는 초코시럽과 하얀 생크림 부분이 실제로 끈적거린다는 것이었다. 물론, 손에 묻어나지는 않는데 묻어날 듯하게 끈적거리기는 한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뒤집어서 사용하면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좀 써보니 나중에는 그 끈적함이 많이 완화되어 그냥 바로 놓고 써도 될 정도가 되었다.

두번째 단점은 쿠션의 높이가 너무 높다는 것이었다. 물론 이것은 그동안 적응해왔던 다른 쿠션의 높이와 비교하여 높다는 것이니 사용하는 이에 따라 느끼는 바가 다를 수는 있는 문제이긴 한데, 아무튼 내가 사용해왔던 손목쿠션들은 이렇게 높지 않았고 그래서, 이 도너츠같은 녀석은 꽤 높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그냥 높은 쿠션에 적응하면서 사용할까 하다가 갑자기 도너츠따위에게 적응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을 한 끝에 이 도너츠를 사진과 같이 슬라이스로 잘라 높이를 반으로 낮춰 버렸다. 그랬더니 꽤 쓸만한 손목쿠션이 되었다.

슬라이스된 도너츠
손목쿠션으로 쓰기엔 높이가 너무 높아서 얇게 잘라 버렸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