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존 지인들과 마장동 첫경험, 대호축산과 고기익는마을

서울숲에서의 소풍이 끝나고 예정대로 마장동으로 향했다. 준비했던 두 가지 옵션, 즉, 마장동 가서 소고기 먹기과 건대인근에서 양꼬치먹기 중에서 의견을 물어 다수결에 의해서 마장동행이 결정된 것이다. 사실, 서울숲에서 놀다 지치면 마장동까지 가기 귀찮아서 건대인근의 양꼬치도 플랜B로 준비해둔 것인데 다들 마장동으로 의견이...

서울숲에서 마장동까지는 지하철로 가기엔 살짝 애매한 감이 있어서 힘들게 버스노선을 찾고 약간의 버벅거림 후에 적절한 버스정류장에 도달하여 무리없이 마장동 축산물시장에서 가까운 곳까지 버스로 이동할 수 있었다. 버스정류장부터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Sophia의 길찾기 능력에 의지하여 움직였다. 한번도 안와봤는데 스마트폰 맵으로 정말 잘 찾아간다. 사실, 버스도 Sophia의 공이 컸는데... 역시 오지 생활을 오래해서인지 방향감각이나 공간지각능력이 발달한 듯하다... 라고 하면 좀 과한가?

축산물시장까지는 왔는데, 여기서부터는 Davina가 회사 회식 때 왔다는 대호축산을 찾는 것이 다음단계의 도전과제(?)였다. 그런데, 여기 분위기가 뭔가 으스스하다. 영화에서나 본 듯한 그 미장센이 살짝 긴장하게 만들었다. 호객행위가 좀 과한 경향이 있다. 신당동에서 떡볶이집 많은 곳에서 경험했던 그런 수준의 호객행위인데, 이 호객행위와 특유의 음침한 미장센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긴장감을 배가시킨다.

대호축산을 찾는 것은 그리 쉽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우리가 처음 들어섰던 곳은 축산물시장의 남문이었고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를 돌파하여 북문까지 도달했으나 대호식당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당황하기 시작한 우리는 점점 대호축산이 아니라도 고기는 다 그게그거 아니겠느냐는 둥, 힘든데 아무 곳이나 들어가도 맛있지 않겠냐는 둥 하면서 합리화를 하기 시작하였다. 그때, Sophia가 다시 선두에 서며 우리를 안내하였다. 알고보니 마장동 축산물시장은 북문/남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문/서문도 있었다! 뭐 그다음에는 Davina가 기억을 되살리며 우리가 목표로 했던 대호축산에 다다를 수 있었다.

아직 우리의 도전과제(?)가 끝난 것이 아니었다. 마지막 과제는 고기를 사는 것이었다. 도대체 우리는 여기가 어떤 시스템인지, 여섯명이서 얼마나 사야 하는지, 또한 고기 부위는 어디어디를 골라야 하는 지에 대해서 결정을 하지 못하며 머뭇머뭇거렸다. 여기서는 내가 앞장서서 안창살을 먹어보자고 제안했으나, 안창살은 또 비싸다네. 게다가 안창살같은 특수부위는 귀해서 대호축산 측에서는 등심 등의 흔한 부위와 특수 부위의 양을 밸런스있게 조절하려는 의도가 좀 보였다. 모듬으로 사면 안창살도 끼여 있고 적당히 넣어 주겠다는 등의 말로 현혹시켰으나 끝까지 안창살을 먹겠다는 의지로 안창살 200g과 살치살 400g, 그리고 나머지는 꽃등심으로 해서 1.5kg을 채울 수 있었다.

일반적인 정육식당에서와 같이 고기를 구입하여 자리를 잡아 상차림비를 내고 먹는 시스템과 유사한데, 마장동 축산시장은 정육점들이 공동으로 식당을 운영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리고 그 운영하는 식당을 고기익는마을이라고 이름지은 듯하다. 그들의 안내로 우리는 고기익는마을이라는 이름을 가진 식당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고, 곧이어 Davina가 고기를 들고 왔다. 대호축산에서 서비스로 차돌박이를 좀 얹어 주었다고 한다. 오~ 인터넷에서 명성이 자자하던데 이런 이유때문인 듯하다.

대호축산에서 사온 고기더미
양이 많긴 한데, 보이는 것보다 많지는 않다. 아래에는 랩으로 빈공간을 만들어서 더 많아 보이게 포장되어 있다

고기먹기 전에 여러 경로로 검색을 해본 결과 고기가 일반적인 마트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엄청나게 저렴하거나 한 편은 아니었다. 다만, 한우임을 좀 더 신뢰할 수 있는 정육점에서 바로 받아 와서 냉동되지 않은 상태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장점 중에 하나이고, 마트에서 잘 구하기 힘든 안창살 등의 특수부위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이 또다른 장점이다. 그리고, 상차림비가 더해지긴 하지만, 일반적으로 소고기를 식당에서 먹는 것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저렴한 편이라고 볼 수 있다. 다른 정육식당과 비교하면 훨씬 저렴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테이블당 셋이 자리를 잡고 고기를 구워먹기 시작하였다. 우리 테이블에는 Sohpia가 엄마같은 마음으로 고기를 구워서 서빙해 주었다. 고기를 무척 잘굽는다. 너무 익히지도 않고 미디엄레어 수준으로 정말 잘 굽는다. 집에서도 평소에 고기 몇점 사와서 구워먹곤 한다고 한다. 게다가, Young 형님이 불판에 김치 올리는 것도 막아 주었다. 나 불판에 김치 올리는 거 진짜 싫어하는데 말은 안했지만 엄청 고마웠다. ㅎㅎㅎ

고기의 질은 확실히 훌륭했다. 특히, 안창살의 육즙은 일품이었다. 특히 냉동시키지 않은 안창살을 미디엄레어 수준으로 적당히 익혀서 먹는 맛은 죽기 전에 먹어야 하는 음식 100가지 안에는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안창살을 가장 먼저 먹었다는 사실이었다. 안창살 먹고 나서 등심을 먹으니 갑자기... 헐...

1.5kg의 고기를 여섯이서 먹었으니 각자 250g은 먹은 셈이다. 물론, 1.5kg 정량이 왔는지 확인할 길은 없었으나 다들 배불리 먹은 듯 양적으로 불만은 없어 보인다. 소고기를 이렇게 배불리 먹는 것이 쉽지는 않은 일이다.

소화를 시킬 겸, 왕십리역 인근까지 걸어가서 카페에 들어가 마지막으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다가 헤어졌다. 마지막으로 아름이 놀려먹기 놀이까지 즐기며...

아참, 한가지 할 이야기가 더 있다. 마장동 최고 난이도의 도전과제는 길찾기도 아니고 고기사기도 아니다. 바로 냄새, 이것이 최고 난이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축산시장을 들어서자마자 특유의 고기 비린내가 코를 엄습해온다. 이것이 생각보다 심각하다. 매일 와서 일하는 사람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우리같이 처음 오는 손님들에게 결코 기분 좋은 냄새는 아니다. 그리고, 마장동을 나온 이후에도 옷에 벤 비린내가 없어지질 않는다. 난 처음에 카페 어디에서 이런 냄새가 나나 했는데, 알고보니 범인은 우리들이었;; 집에 와서 페브리즈를 폭풍 분사해 주었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