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로스코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전시회에 입장하기 전, 그의 그림을 대하는 나의 자세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 양반이 거장인지 사기꾼인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겠어!' 정도가 될 것같다. 화가도 아니고 미술전공자도 아닌 내가 이런 자세로 그림을 감상하겠다는 것 자체가 당돌함을 넘어서 갖잖음의 단계에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ㅋㅋ

그리고, 난 전시회장을 나오면서 이런 감정상태에 있길 바랬다. '아, 마크 로스코Mark Rothko는 정말 거장이었구나.'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앞으로 난 누군가가 마크 로스코에 대해 들어 봤냐고 묻는다면 '자신이 사기꾼인 줄 모르는 미치광이'라고 답해주려고 한다.

너무나 단순하여 오히려 감상하기 너무나 어려웠던 그의 작품들이었기에 난 그럭저럭 사전조사를 많이 하고 전시회를 찾았다. 이번 서울전시에 관련한 홍보 영상을 유튜브에서 찾아본 것도 그런 노력 중의 일환이었다. 그리고, 그의 작품을 대하는 것은 자기 내면과의 대화를 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난 그의 작품에서 어떤 감동도 받지 못했고, 위의 감상법에 근거하자면 내면과의 대화를 시도하였지만 실패했다고 표현할 수 있겠다. 도대체, 왜 그의 작품들이 그토록 비싼 가격에 팔려 나가고 왜 그를 거장이라고 불리우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의 작품은 나같은 아마추어에게는 꽤나 높은 벽이었다.

마크 로스코와 함께 추상미술의 거장으로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잭슨 폴락Jackson Pollock의 그림을 볼 때도 이 정도의 멍함은 아니었는데... 적어도 잭슨 폴락의 작품을 볼 때는 불규칙한 페인트들의 흔적에서 묘한 심미적 만족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마크 로스코의 작품들은 참... 그냥 페인트 어설프게 칠해 놓은 벽을 바라보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마크 로스코는 자신의 그림을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 자세하게 설명해준 화가로도 유명한데, 그의 조언에 따르면, 관람자는 그림 앞 45cm 앞에 서서 시야에 그림만 들어 오도록 하여 그림에만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전시회장의 가이드라인(?)은 작품들로부터 적어도 1m 이상 떨어져서 그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런 상태를 유지할 수는 없었다. 뭐, 그렇다고 해서 45cm 앞에 서서 감상했다면 작품을 이해했을 것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다. 충분히 커서 1m 떨어져서 봐도 시야에 꽉 차는 그림들 또한 이해가 불가한 것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작품은 보다가 그림이 앞뒤로 쿵쾅거리고 있다는 착각을 받긴 했는데, 이것 또한 내가 작품을 이해했다거나 "내면과의 대화"에 성공했다라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같다. 그저, 같은 색을 계속 들여다 보면 잔상같은 것이 남아 있곤 하는데, 그로 인해서 일시적으로 어지러움을 느낀 것일 뿐이라고 생각된다. 같은 맥락에서 보자면 이 그림을 보고 "내면과의 대화"에 성공한 사람들도 비슷한 상태때문에 그렇게 느꼈던 것이 아닐런지... 흔히들 뭔가 반성을 해야 할 때 벽을 보고 있으라는 조언을 주위로부터 듣곤 하는데,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된다.

결국, 이렇게 넓은 색면으로 구성된 그림을 보는 것과 특정색으로 칠해 놓은 벽면을 보는 것이 어떻게 다른가라는 의문을 남기며 전시회장을 나오게 되었다. 물론, 그의 그림은 거친 붓터치들과 덧바름으로 인해서 같은 색이라도 명암의 차이가 존재하기는 한다만, 벽도 이런 식으로 칠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벽을 보며 반성의 시간을 갖는 것과 마크 로스코의 작품을 보면서 "내면과의 대화"를 하는 것이 무엇이 다른 것인지 궁금하다.

그럼에도 유지태씨가 열정적으로 녹음한 오디오가이드는 마치 라디오 드라마를 청취하고 있는 듯한 인상마저 느껴졌는데, 남자인 내가 이러할 정도인데 여자들은 어떠했을 지 상상이 간다. 그의 그윽한 목소리와 함께 하면 사기꾼도 거장으로 느껴지지 않을까나?

오디오가이드를 통해서 알게된 지식 중 좀 충격적이었던 것은 마크 로스코가 피카소에 대한 비판을 했다는 것이다. 초반에는 혁신적인 작품을 만들었으나, 나중에는 그저 인기스타가 되어 사인만 하기 바쁘다라는 투로... 그리고, 이제 더이상 누구도 큐비즘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고...

그는 피카소의 그림을 그저 "색갈만 아름다운 디자인 작품" 같은 평범한 다른 그림과 다를 바가 없다고 폄하했지만, 나같은 아마추어 관람객들은 그런 평범한(?) 작품들을 통해서 심미적 만족감을 느끼며 행복해 한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