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녀, 칼의 기억

무협 영화를 보러 극장을 마지막으로 찾은 것이 언제인지 기억조차 없을 정도로 이제 무협 영화는 한국 관객들에게 그저 과거의 인기있던 장르로만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 게다가 홍콩무협도 아니고 한국무협이라니! 그럼에도 등장하는 배우들의 무게감을 보며, 그래도 본전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극장을 찾았다. 그런데, 배우들의 무게감이 재미로 연결되지는 못했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정말 일품이다. 이병헌, 전도연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제 갓 연기자로서의 커리어를 쌓고 있는 김고은의 연기 또한 훌륭하다. 그런데, 스토리가 정말 공감이 가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이 어찌할 수 없는 운명의 장난에 감정이 북받쳐 올라 울음을 터뜨려도,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저 우는가보다 한다. 영화에 몰입이 안될 정도로 스토리가 엉망이다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저렇게 연기를 잘하는데 감동이 안느껴지다니...

무협영화를 보면서 스토리로 비판을 하는 것은 어찌보면 좀 가혹한 면도 있다. 무협영화는 그냥 슝슝 날아다니는 액션을 즐기려고 보는 것이지, 스토리 때문에 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상들은 와호장룡을 연상케할 만큼 나쁘지 않다. 감독이 와호장룡을 많이 참고해서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좀 아류작이라는 느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설이가 아니라 홍이였다면 좀 납득이 되는 복수극이 되지 않았을까나... 하는 생각이 든다. 복수에 대한 명분과 의지보다는 그저 복수할 팔자였다, 뭐 이런 식으로 몰고가니, 참...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