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미쳤다!』 에리크 쉬르데주

난 스스로를 조직부적응자라고 생각한다. 지인들은 내가 이렇게 말하면 나보다 더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도 회사생활 잘만 한다고 핀잔을 주긴 하지만, 그 정도야 어찌됐던, 조직에 적응하는 것은 나에게 상당한 스트레스꺼리이고 부담스러운 일인 것은 분명하다.

LG전자에서 최초로 외국인 임원이 된 에리크 쉬르데주라는 사람이 쓴 『한국인은 미쳤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난 아마도 그를 가장 잘 이해하는 한국인 중에 하나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서두에서 언급된 이유 때문에! 그들에겐 우리가 참 이해하기 힘들고 함께 일하기 힘든 종족이란 생각이 들 것이다. returnee들이 한국 기업에 입사하여 적응하기 힘들어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고...

그가 LG전자에서 일한 기간은 LG전자가 모바일 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다가 스마트폰 시대를 내다보지 못하고 몰락하게 된 그 시점과 일치한다. 외부에서 왜 LG전자는 훌륭한 잠재력을 가지고 그렇게 밖에 못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점을 이 책을 읽으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난 이 책을 읽은 후에, LG전자라는 회사가 10년 후에 과연 존속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이 한국식 수직적 기업문화에 대한 비난만 하는 것은 아니다. LG전자 임원들이 보면 거슬릴 수도 있겠지만, 난 이 책이 상당히 중립적인 입장에서 쓰여져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언급한 내용이 사실인지 체크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는 한국인들의 수직적 기업문화와 미친듯이 일하는 업무과잉에 대하여 적응하기 힘들다거나 이해하기 힘들다라고 썼지, 그것이 나쁘다고 쓰지는 않았다. 게다가, 그는 이해할 수 없는 이 문화가 효율극대화를 이루기 위한 훌륭한 방법이라고까지 언급한다. 물론, 혁신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이런 관료화된 문화가 장애물로 작용할 것이라고도 언급하긴 하지만...

그의 근속시기가 딱 LG전자의 모바일 부흥기와 몰락기에 오버랩된 까닭에 LG유플러스(구 LG통신)의 전 사장이었던 남용 전 LG전자 부회장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 것이 개인적으로는 흥미로웠다. 당시에 남 사장은 상당히 고전하던 LG통신을 훌륭한 마케팅 능력으로 3강의 대열에 합류시키며 두각을 나타낸 후 LG전자를 맡게 되었는데, 안타깝게도 그는 스마트폰 시대에 대한 오판을 하고 만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LG전자가 스마트폰 시대에 뒤쳐진 첫걸음을 디디게 된다.

부모님도 그러했지만 나 또한 LG라는 기업에 대해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또한 남용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존경할만한 기업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당시의 판단 미스를 상당히 안타까워 했던 기억이 나는데, 책에서도 그는 열린 마인드를 가진 경영자로 묘사되고 있다.

난 이 책에 언급되고 있는 한국적인 기업문화의 장단점이 단지 LG전자에게만 국한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마도 정말 많은 한국의 기업들이 이러한 스타일로 현존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 또한 훌륭한 효율성에 비하여 혁신적으로, 또, 창조적으로 변화에 대응하는 데 어려움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의 문화를 한번에 바꾸는 것은 쉽지 않겠으나, 갈수록 변화하는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선 이 책에서 언급하는 한국식 수직적 기업문화에 대한 점진적인 변화가 한국기업에게 남겨진 궁극적인 과제가 아닐까 한다.

세상에 쓸데 없는 것이 연예인 걱정, 재벌 걱정이라고 하는데, 내가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닌가 모르겠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