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노우맨』 요 네스뵈

도서정가제 확대 실시 이후, 노원평생학습관에서 참 많은 책을 빌려봤지만, 이렇게 너덜너덜해진 책은 또 처음이다. 내 독서 취향이 대체적으로 대중적이지는 않기에 대부분 빌리는 책들이 깔끔한 편인데, 종종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던 책을 빌릴 때 이런 너덜너덜함을 경험하곤 한다. 그래도, 이번 건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너덜너덜했다.

요 네스뵈Jo Nesbø는 나에게 그리 낯설은 작가는 아니다. 그의 다른 작품인 『헤드헌터』를 이미 읽은 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헤드헌터』를 읽으면서 엄청난 감동을 받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번 『스노우맨』을 읽기 전에 그리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예상밖으로 책이 두꺼워 상당한 부담을 느꼈다. 그런데, 이 책 정말 재미있다.

역시 미친놈이 범인으로 등장해야 이야기가 재미있다. 뭔가 예측하기가 힘든 의외성이 나타나고 이런 것이 수사의 방향을 잡기 어렵게 하며 그럴 수록 이야기는 복잡해지고 사건이 재미있어진다. 경찰이 헛다리를 자주 짚을 수록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을 보니, 이런 면에서 난 참 놀부심보인 듯하다. 『스노우맨』에서도 경찰은 자주 생사람을 범인으로 몰아가다가 다시 범죄가 일어나 시민들에게 쪽팔림을 당하고 다시 재수사를 하곤 한다.

『스노우맨』에서도 미친놈이 연쇄살인마로 등장한다. 살인을 할 때는 항상 희생자의 집근처에 눈사람을 만들어 놓는다. 심지어, 눈사람을 만들 만큼의 눈이 없으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데, 그래서 주로 범죄는 첫눈이 오는 11월에 이뤄진다. 제대로 미친놈이 아닐 수가 없다.

범인의 목표는 가정 주부인데, 그 중에서도 불륜을 저지른 여자를 대상으로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희생양이 되는 여자의 아이들은 남편의 아이가 아니고 누군가 다른 남자의 아이인데, 이를 속이고 남편과 결혼한 여자들이 희생양이 된다. 범인은 자신이 마치 정의의 사도인양 그런 여자들을 찾아가 눈사람을 만든 후에 살해를 한다.

전지적작가 시점에서 서술이 되기 때문에, 억지로 범인의 입으로 왜 범죄를 저질렀는지 경찰에게 설명하는 상황을 만들어 놓지는 않는다. 내가 이런 설정을 매우 싫어하는데, 의외로 전지적작가 시점으로 씌여 지니 그냥 작가가 범인의 입장에서 서술을 해주니 이런 설정을 일부러 만들 필요도 없고 깔끔하다.

작가는 이런 불륜을 저지른 여자에 대하여 특별한 입장을 강요하지는 않는 듯하다. 그저 아버지없는 아이로 키울 것인가, 남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아이에게 아버지를 만들어 줄 것인가라는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대변해주는 듯한 뉘앙스도 느껴진다.

생물학적으로 남자는 자신의 아이가 정말 내 자식인지 항상 의심을 할 수 밖에 없다. 과학의 발달로 이제는 약간의 수고와 비용을 들이면 자신의 아이가 정말 생물학적으로 자신의 아이인지 알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아버지가 자신의 아이에 대한 유전자검사를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을 읽은 후, 만약 결혼을 하여 아이가 생긴다면 유전자검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노우맨』이 요 네스뵈의 해리 홀레 시리즈 중에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앞으로 이 해리 홀레 시리즈를 종종 찾아 읽어볼 예정이다. 나머지 책들이 『스노우맨』의 75%정도만 재밌다고 해도 성공한 셈이니까.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