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마용 투어를 가다

역사적으로 다양한 왕조의 수도로 사용되었던 시안시와 섬서성이기에 유적지들이 참 많지만, 그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것을 꼽으라면 역시 병마용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데, 병마용갱은 차를 타고 시안시 외곽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에 다소 까다로운 관광코스다. 병마용을 꼭 보고 싶다는 열망이 없는 나에게는 고민이 좀 되었다. 앞으로 일생동안 시안에 다시 방문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할 테니 이번 기회에 꼭 가야겠다는 생각, 한편으로는 상당히 번거롭고 반나절을 써야하며 말안통해서 스트레스받는 것을 감안하면 굳이 갈 필요가 있나 싶기도... 이런 고민이 23일 저녁에 곰탱이와 회족거리 갔다가 우연히 해결되었다. 가는 길에 Tourist center가 보이자 곰탱이가 용감하게 나를 데리고 들어가 병마용 투어 상품에 가입하게 된 것이다.

내가 선택한 상품은 영어로 설명해주는 투어가이드가 병마용 테라코타 공장 견학과 병마용갱을 안내해주는 옵션이었는데, 가는 길에 있는 화청지까지 보고 싶었으나, 곰탱이가 겨울에는 공연도 안하고 굳이 볼 필요 없다는 의견을 강력하게 주장하여 이를 따르기로 했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곰탱이의 말을 들은 것은 (다른 의미에서) 매우 잘 한 일이었다.

시안시에 온 이후로 느즈막히 점심쯤 일어나서 두어시간 동안 주식시장을 체크하고 오후부터 관광을 했던 패턴에 익숙해져 있다가 아침 9시부터 일어나 여행을 하게 되어 살짝 긴장하였으나, 무리없이 출발하게 되었다. 나에게는 연락수단이 없어 곰탱이를 통해서 9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연락이 왔는데, 호텔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단다.

병마용 투어는 나뿐만 아니라 독일아저씨-중국아줌마 커플과 함께 하게 되었다. 독일 아저씨의 이름은 마이클, 중국아줌마 이름은 룰루였고, 투어가이드의 이름은 리였다. 투어가이드는 차안에서도 설명을 해주고, 운전기사가 따로 있는 시스템이었다. 투어 상품 가격이 350위안이었음에도 나 혼자 가이드를 받는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단체 투어일 가능성이 매우 높았음을 간과하였다. 아무리 중국 인건비가 저렴하기로서니... 단체 투어인 것이 의외였다는 것이지 불만이라는 뜻은 아니다. 나중에는 오히려 함께해서 더 재미있었다. 좀 아이러니한 사실은 차 안에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음에도 운전기사만 제외하면 모두 영어로 소통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투어가이드와 중국아줌마는 중국어로...

중간에 병마용 테라코타 공장에 들었는데, 관광상품으로 팔리고 있는 병마용 테라코타 인형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해 주었는데 작은 것들은 한꺼번에 만들지만 큰 것들은 몸뚱아리와 얼굴을 따로 만들어서 붙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해야 얼굴 표정을 다 다르게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한 10분 설명해주고 기념품샵으로 안내하는 것이 아닌가! 거의 20분 이상을 허비한 것같다. 시작부터 쇼핑을 시키니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쇼핑으로 시간을 허비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매우 나빠졌는데, 다행스럽게도 이 공장을 끝으로 어떤 쇼핑 시간도 없었다. 내 굳은 표정때문에 일부러 뺀 것은 아니겠지? ㅎㅎ

병마용갱에 도착
저 앞에 아치형 지붕을 한 건물안에 병마용들이 있다. 갱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앞에 버건디 코트를 입은 사람이 우리 가이드다

화청지를 지나서 병마용갱에 도착하였다. 차에서 내려서 좀 걸어 가자 입구가 보이고 가이드가 준 입장권을 들고 개촬구를 통과하고 또 조금 더 걸었더니, 드디어 가이드가 다왔다고 한다. 뭔가 병마용들이 들어 있을 것 같은 건물은 안보이지만 저 앞에 보이는 것이 그것이라고...

안으로 들어가자 아까 그 평범해 보였던 건물이 엄청나게 큰 건물이었고, 그 안에 병마용들이 위용을 드러내며 일렬로 세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건물이라는 표현보다는 무슨 체육관같은 느낌이었다. 정면에서 다들 사진을 찍느라 북적거렸다. 가이드가 사진찍을 시간을 주어 북적거리는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 정면샷을 하나 찍은 후 셀카를 하나 찍었다. 가뜩이나 중국 여행온 이후로 피부가 안좋아 셀카 찍을 심정이 아니었으나 병마용 인증을 해야 겠다는 의지로... 마이클 아저씨네 커플도 요령껏 서로 사진을 찍어 주고 있었다.

이미 어느정도 알고 간 사실이긴 하지만, 병마용갱은 3개의 갱으로 나뉘어져 있고, 제 1갱이 가장 많은 병마용들이 전시(?)되어 있기에 볼 거리가 가장 많았다. 전면에 멀쩡한 병마용들이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 것과는 달리, 제1갱 뒤쪽으로 가면 뭔가 아직 손, 발, 얼굴 등을 맞추지 못한 병든(?) 병마용들이 번호표를 부착한 채 서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투어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제1갱 다음은 제3갱으로 가게 되어 있는데, 제3갱은 병마용들의 수는 제1갱에 비해 현저히 적지만 일반적인 병사들이 아니라 제사장이나 뭔가 좀 다른 계급사람들을 묘사한 인형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투어가이드가 아니었으면 잘 몰랐을텐데 꽤나 설명을 잘 해준다. 열심히 외워서 말하는 듯했지만 영어 발음이 듣기 거북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해하기에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설명 중에 내가 모르는 단어들이 종종 등장해서 다시 물어보곤 하였다.

마지막으로 제2갱은 멀쩡한 병마용이 거의 없으나, 매우 의미있는 병마용 몇 개를 유리관에다가 돋보이게 전시를 해 놓았는데, 특히 무릎꿇은 궁수가 매우 중요하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다. 오랜 세월 때문에 병마용들을 발굴 하자마자 색이 바래버리는데 그래도 이 무릎꿇은 궁수 등 몇몇은 색이 약간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실제로도 옷에서 컬러를 식별할 수 있었다. 영어로도 'Kneeling Archor'라고 표현해 놓았는데, 가이드가 'Kneeling Archor'라고 설명했을 때는 못알아 들었다가 병마용을 직접 보고선 Kneeling을 알아 챘다. ㅋㅋ

난 병마용들의 얼굴 표정 하나하나가 다르다라는 사실에 그리 고무되지는 않았다. 그래서, 병마용갱 내에서 그다지 흥미로움을 느끼지는 못했다. 오히려 같이온 마이클 아저씨나 가이드와 시시콜콜한 대화하는 것이 재미있었는데, 아마도 그동안 중국어 못해서 꿀먹은 벙어리 신세였던 것에 대한 보상심리가 발동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가이드에게 무료로 입장해서 부러웠는데 생각해보니 자주 와서 지겨울 것 같다라는 멍청한 질문을 했더니 일주일에 3~4번오고 성수기엔 매일 오다시피 한단다. 지나가다가 커다란 디스플레이 밑에 삼성로고가 보이길래, 한국에서는 '삼성'이라고 읽는다고 하자, 중국어로는 '산신'이라고 읽는다고 알려 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집이 삼성전자 시안공장 근처에 있다고... 공장이 엄청 크단다.

이렇게 해서 병마용갱에 대한 투어는 마쳤고, 식사할 차례, 가이드가 손님이 아무도 없는 어느 식당으로 우리를 안내하였다. 몰랐는데, 상품안에 점심도 포함이 되어 있단다. 120위안의 입장권도 포함된 가격임을 고려하면 저렴하긴 참 저렴하다. 다만, 주류나 다른 음료는 추가로 요금을 지불해야 했는데, 난 물조차 주문하지 않았다. ㅋㅋㅋ

조금 의아했던 것은 가이드가 우리와 겸상을 하지 않고 구석진 곳에 있는 테이블에 가서 뭔가 다른 것을 먹고 있는 상황이었다. 룰루 아줌마랑 내가 함께 먹자고 했음에도 여러 번 괜찮다며 사양하는 것을 보니, 가이드의 점심은 회사에서 따로 안챙겨 주나보다. 너무 야속하다 싶어 그냥 돈을 내줄까 하다가 고객이랑 같이 점심먹기 싫은 것일 수도 있으니 그냥 우리끼리 먹었다. ㅎㅎㅎ;; 좀 안쓰러워 보였다. 심지어 운전기사아저씨는 아무것도 안먹는 듯? 참고로 점심은 백반에 회전식 테이블에 반찬이 몇 개 나오는 구조였는데, 딱히 입에 맞지도 않고 멀미할까봐서도 일부러 조금만 먹었다. 그랬더니 룰루아줌마가 많이 걱정을 해준다.

진시황릉

진시황릉
병마용 입장권을 사면 함께 볼 수 있으나, 병마용갱에서 또 차를 타고 가야 하는데다가 딱히 볼거리는 없으니 바쁘다면 과감히 생략하는 것도 괜찮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다시 차를 몰고 몇 분 후에 진시황릉에 도착한다. 병마용갱 입장권을 사면 진시황릉도 함께 볼 수 있는 듯하다. 진시황릉은 딱히 볼 것은 없었다. 그냥 드넓게 펼쳐진 평원에 백성들을 동원해 산과 같은 크기의 엄청난 무덤을 만들었다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본다는 의미가 있을 뿐이었다. 여기서 나의 무식함이 또 드러났는데, mausoleum이라는 단어를 계속 못알아 듣고, 무슬림으로 알아 들어, 무슬림들이 진시황과 무슨 관련이 있나 혼자 고민하다가 가이드의 스피치에 반복적으로 나오길래 쪽팔림을 무릅쓰고 물어봤더니 거대한 무덤이라는 뜻이라고 알려준다. 마이클 아저씨한테 물어 봤더니 자기는 알고 있었던 단어라고... 아, 창피하다.

그냥 보자마자 나오기도 좀 그래서, 넓다란 길을 따라 가이드와 함께 좀 걸어 갔는데, 걸어 가면서 마이클 아저씨와 독일맥주 이야기를 하다가 둘이서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맥주가 벡스인 것을 알고 서로 반가워 했다. 그리고 독일에서는 보통 마트에서 12병씩 맥주를 사는데 바이엔슈테판 12병이 30~40유로 정도 한다고 한다. "Unfair!!"라고 절규하며 한국의 바이엔슈테판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것에 분개하였다. 잠깐 축구 이야기도 했는데, 마이클 아저씨는 지금은 2부리그에 있는 1860뮌헨을 응원한다고 한다. 난 아스날을 응원한다고 했더니 뭔가 비웃는 듯한 표정이다. 런던에 연고도 없으면서 런던팀 응원한다는 뜻일까? ㅋㅋ

가이드와도 잠깐 얘기를 했는데, 얘 스마트폰은 아이폰6 쓴다. 남친이 사줬단다. 부자집 딸인데 취미로 가이드 하는 것일 수도... 아까 식당에서 안쓰러워 했던 마음이 많이 상쇄되었다. ㅋㅋㅋ 혹시 쯔위사태에 대해서 알고 있냐고 물었는데, 모른다고... 그러나, 타이완은 중국에 속한다라는 것을 확실히 주장한다. 중국인들은 다들 그렇게 교육받나보다. 그리고, 한국에 대한 다른 이야기도 나눴는데, 알고 있는 말은 '언니' 하나 밖에 없는 듯했다. 그리고, 좋아하는 아이돌은 빅뱅! ㅎㅎㅎ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