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청지

화청지는 병마용갱 가는 길에 있기 때문에 병마용 투어에 패키지로 포함되어 함께 보고 시안 시내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그러나, 내가 가입한 투어 상품에는 화청지가 빠져 있었기 때문에, 아쉽지만 화청지 구경은 못하겠거니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투어가이드가 뜻밖의 제안을 하는 것이다. 화청지를 보고 싶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더니 시간도 남고 했으니 화청지도 가이드를 해주겠다는 것이다. 오호! 이런 행운이 있나! 생각해보니, 출발할 때도 화청지 들를 때 시간 남으면 화청지도 들를 수 있다는 말을 한 것같다.

추측컨데, 가이드에게는 할당된 시간이 있고 그 시간을 아무것도 안하고 있기보다는 화청지 구경시켜 주는 것이 덜 지루할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해주는 듯하다. 물론, 우리가 착하게 잘 따라와서 선심쓰듯 가이드 해주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 의도야 어떠하든 난 정말 고마웠다. 화청지 안들르고 왔으면 아쉬웠을텐데... ㅎㅎㅎ

가이드를 추가로 해주는 댓가를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화청지 입장권은 추가로 지불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가이드는 무료입장가능. 가격은 병마용과 같은 120위안이다. 참 시안의 유적지/박물관들은 입장료가 장난이 아니다. 계산은 안해봤지만 입장권 구입비용으로만 500위안은 쓴 것 같다.

화청지는 당태종과 양귀비가 사용했던 일종의 별장같은 개념인데, 특히나 목욕시설로 유명한 듯하다. 뒤쪽에 있는 산에서 나오는 온천물을 이용했다고... 그리고 배산임수의 풍수지리상 요지에 만들어진 곳이라는 설명도 해주었다. 풍수를 중국발음으로는 '펑쉐'정도로 읽는 듯하다.

입장을 하자마자 커다란 연못이 보인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이 물이 따뜻하다고 하는데, 의아해서 내가 직접 손을 살짝 담가보니 결코 따뜻하지 않다. 가이드는 그냥 잘 모르겠다고... ㅎㅎㅎ 마이클 아저씨가 연못안에서 헤엄치고 있는 잉어들을 보며, 물이 뜨거웠으면 저 잉어들이 살 수 없다라고 한마디 거들었다.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자 양귀비를 연상시키는 매력적인 동상이 나타났는데, 가이드에 따르면 양귀비는 저 동상과는 달리 키가 작고 풍만한 스타일이었다고 한다. 마이클 아저씨가 룰루 아줌마를 가리키며 이런 스타일이었냐고... ㅋㅋㅋ

이 밖에 대부분의 볼거리는 목욕시설이었는데, 양귀비의 것은 좀 작은 편이었고, 왕과 양귀비가 함께 사용하던 탕은 크기가 좀 커보였다. 양귀비의 것이 좀 더 앙증맞고 마음에 든다. 지금은 반짝이지 않지만 원래는 옥으로 만들어서 반짝였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다. 지금도 반짝거리고 있어서 자세히 보니 관광객들이 던진 동전때문이었다. 이외에 왕자들이 공용으로 사용하던 욕실, 이들을 보좌하던 신하들이 사용하던 욕실 등도 잘 보존/복원되어 있었다.

각종 목욕탕으로 흐르는 물의 원천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는 물이 보여서 다시 손을 담궈 보았으나 전혀 뜨겁지 않았고, 가이드는 다시 무안해 했다. 왜 뜨겁지 않은지 모르겠단다. 뭔가 급조해서 외워온 티가 좀 난다. 화청지도 수십번 가이드해준 거 아니었나? ㅋㅋㅋ

화청지 내에는 거의 쓰러질 듯한 자세로 자라고 있는 오래된 나무들이 종종 보였는데, 이 또한 잘 보존하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이 보였다. 다리 등이 나무에 닿지 않게 지어졌다던지 여러 버팀목으로 받혀 놓고 있다던지 하는 등의 모습이 뭔가 존경스러웠다. 한국은 그냥 잘라 버리는 경우를 자주 봐서리...

화청지가 당태종과 양귀비의 로맨스로 알려지긴 했지만, 시안사변과 국공합작 등의 중요한 역사적 이벤트와도 연관이 있는데, 실제로 화청지 안에 장개석의 집무실을 잘 복원해 놓은 공간이 있었다. 한국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서안사변, 국공합작 등은 제2차세계대전 전반에 있어서도 중요한 흐름 중에 하나였다.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국공합작이 일어나지 않고 중국이 마지막까지 일본에 저항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UN에서 상임이사국 자리를 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가이드가 제2차세계대전과 서안사변 등에 대한 설명을 열심히 해주자, 독일 출신 마이클 아저씨는 평소에도 말이 없더니 더욱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렸다. ㅎㅎ

이렇게 해서 일정에도 없었던 화청지까지 둘러 보게 되었다. 가이드를 참 잘만났다는 생각이 든다. 화청지 가이드 서비스만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고, 같은 회사 소속인 것으로 보이는 다른 가이드는 병마용 투어 중에 관광객들의 컴플레인을 받은 듯하다. 그래서, 일부 관광객은 우리차로 옮겨 타서 시안시내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옮겨 타지 않은 다른 관광객들은 여전히 그 가이드에게 컴플레인을 하는 듯 보였다. 우리 가이드는 옮겨탄 투정쟁이 영국 아줌마와 다른 남자 관광객 두명을 투숙하고 있는 시안시내의 호텔로 잘 바래다 주고 벨 호텔에서 내리며 작별 인사를 하였다. 내가 있는 웨스틴 호텔까지 같이 가지 못해서 좀 아쉽긴 하지만 고마운 점이 훨씬 많기에 작별의 정을 충분히 표현해 주었다. 또한, 옮겨탄 관광객들 전에 마이클-룰루 커플들과도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하였다. 룰루아줌마와는 영어에 익숙하지 못해서 많은 대화를 나누지 못했음에도 참 오랫동안 손을 흔들어 준다. 잠깐이지만 금방 정이 들어 버리는 것이 낯선 곳을 여행할 때의 묘미인가 보다.

나중에 곰탱이에게 가이드 칭찬을 했더니 나중에 따로 불러다 개인가이드로 써야 겠다고... ㅋㅋㅋ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