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로버필드 10번지

어느 시골 도로에서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해 정신을 잃었는데, 나중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지하 감옥같은 곳이고, 벽에 다리가 묶여 있다면? 게다가 어느 큰 덩치의 아저씨가 오더니, 여기는 지하 벙커이며 외계인의 침략을 받아서 밖은 방사능 같은 걸로 오염되어 나갈 수가 없으니 앞으로 여기서 잘 살아 보자라고 한다면? 당신은 이 아저씨를 믿고 방사능으로부터 구해준 것에 감사해 하겠는가, 아니면 말도 안된다며 탈출할 것인가? 클로버필드 10번지의 시작이 바로 이러하다.

내가 이런 상황이라면 아마도 이 집 아저씨 말을 믿지는 않겠지만 탈출을 할 엄두는 안난다. 그런데, 클로버필드 10번지의 여주인공인 미쉘(메리 엘리자베스 윈스티드Mary Elizabeth Winstead)는 나와는 반대로 이 아저씨의 말을 믿지만 그래도 이 아저씨와 한 집에 살 수는 없다면서 탈출을 시도한다. 이해한다. 내가 여자라면 정말 이 미친 아저씨와는 결코 살 수 없을 것같다. 방사능보다 더 무서운 아저씨다.

난 이 영화가 상당히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뭔가를 숨기려고 하기 보다는 조금씩 조금씩 힌트를 주면서 관객들에게 과연 당신이라면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라고 묻는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조금씩 조금씩 '탈출하는 수 밖에 없지 않겠어?'라고 관객들을 설득한다. 그리고, 관객들이 거의 다 설득당할 타이밍에 미쉘은 관객들의 응원(?)을 받으며 마침내 탈출을 시도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관객들에게 묻는다. '탈출하는 것이 옳은 것인가?'

영화속의 미쉘은 정말 당찬 여성으로 그려진다. 탈출이라는 엄청난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모습은 정말 놀라울 정도이며, 이 영화가 어쩌면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이런 페미니즘이라면 언제나 환영이다.

예전에 클로버필드라는 제목을 가진 영화가 있었다는 것이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데, 이번 클로버필드 10번지가 그 영화와 연관이 있는 지는 잘 모르겠다. 공통점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