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의 신』 윌리엄 엥달

꽤 흔한 음모론 중에 하나인 로스차일드 가문이나 록펠러 가문이 전세계 경제를 좌지우지 한다라는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이 새록새록 커지고 있는 와중에 발견한 책이 바로 윌리엄 엥달William Engdahl의 신작인 『화폐의 신』이다. 원제도 『Gods of Money』이다. 3부작 중에 마지막에 해당된다고 하는데, 우선 난 최근에 나온 이 『화폐의 신』만 읽게 되었다.

아마도 내가 읽은 책 중에 미국 근현대 경제사를 가장 잘 정리한 책이 아닌가 한다. 예전에 읽었던 지오반니 아리기Giovanni Arrighi 3부작이 역대 헤게모니 국가에 대한 연대기적인 설명에 집중했다면 『화폐의 신』은 미국 경제를 중심으로 어떻게 영국으로부터 헤게모니를 가져와서 어떻게 현재까지 그 헤게모니를 유지하고 있는지에 대한 설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내가 이해한 바에 의하면, 윌리엄 엥달은 『화폐의 신』을 통해서, 파운드에서 달러로 헤게모니가 넘어가는 과도기적 과정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양차 세계대전으로 인하여 기존에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던 영국은 자금난을 겪게되고, 그래서 금보유고도 줄어들게 되며, 따라서 기축통화로서의 파운드는 위기에 봉착한다. 이 때 경제적으로 여유로웠던 미국, 정확히 이야기 하자면 미국의 핵심 권력들은 영국에게 신용과 달러를 연계하며 영국으로 하여금 달러를 보유함으로써 파운드를 지탱하여 헤게모니를 좀 더 유지하게 하는 동시에 자연스레 금보유량을 축적한다. 당시에, 유럽은 현재 각국이 달러로 외환보유고를 유지하려 하는 것과 같이 파운드를 보유하여 외환보유고를 유지했었는데, 이러한 상황을 좀 더 유지시켜 준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에는 자연스레 금보유량에 따라 헤게모니가 달러로 넘어간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같다.

그리고, 록펠러 가문에 대한 이야기가 잘 설명되어 있는 점도 마음에 든다. 미국의 경제주권은 실질적으로 JP모건이 손에 쥐고 있다가 록펠러 그룹으로 넘어 가게 되는데, 난 록펠러라는 인물을 그저 스탠다드 오일을 위시한 산업계의 거물로만 알고 있었지, 실질적으로 미국 금융과 산업 양쪽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인 줄은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사실상 미국의 최상위 권력집단이었다.

또한 『화폐의 신』은 독자들로 하여금 자연스레 미국 정부와 금융권력을 각기의 집단으로 인식케 하는데, 실질적으로 전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연방은행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FRB로서, 바로 록펠러 등의 집단이 이를 통해서 전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은 때론 각 정부들이 전쟁을 일으키게 교묘히 도발을 하기도 하여 자신들의 금융권력을 유지하곤 한다. 뭔가 무협지를 읽는 기분이 들었다.

이외에 역사적으로 흥미로운 이야기도 자주 등장한다. 대표적인 것이 처질의 독일 히틀러에 대한 대응이었다. 처칠은 히틀러가 독일을 장악하기 전에 독일 내에 반히틀러 세력을 이용하여 히틀러를 제거할 기회가 있었으나, 반히틀러 세력이 독일 부흥을 이끌며 유럽의 맹주로 발도둠하는 것이 영국의 헤게모니 유지에 더 큰 위협이 된다고 판단하였고, 따라서, 히틀러라는 독재자의 성장을 방관하며 유럽 국가들끼리의 전쟁이 유발될 것을 기대하였다. 그리고, 처칠의 바람대로 히틀러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게 되며 유럽은 쑥대밭이 되고 만다. 다만, 처칠은 영국까지 이 전쟁에 휘말리게 될 줄은 예상치 못했던 것같다.

또한, 제2차 세계대전 시 일본에 원자폭탄을 투하했던 당시의 상황이 사실과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도 언급되어 있다. 일본의 항복을 받아내기 위하여 수많은 미군을 상륙시키다가 막대한 인명피해를 유발하는 것을 막기위해 불가피하게 원자탄을 사용했다는 근거와는 달리, 이미 일본은 전의를 상실한 상황이라 그냥 해상 봉쇄만 하였다면 항복을 받아낼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단지 원자탄의 위력을 시험해보고 싶기도 하고 소련에게 미국의 우월함을 보일 필요성으로 인하여 원자탄을 사용했다라는 것이 진실이라고 한다. 심지어 일본의 진주만 공격은 루즈벨트가 의도적으로 도발했다라는 주장도 담겨 있다.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것인지...

영미에 대한 프랑스의 헤게모니 도전 또한 흥미로웠다. 당시에 영국과 미국이 주도하는 브레턴우즈 체제의 약점은 무역수지 악화로 인한 금본위제 포기였는데, 금태환도 못해주는 주제에 헤게모니를 유지하려는 영미의 태도가 거슬렸던 프랑스는 강력하게 금본위제로의 회귀를 주장하며 영미에 도전했고, 이에 미국은 뉴욕 은행들을 동원해 프랑스 은행에서 대규모 예치금을 인출해 버림으로써 유럽의 다른 은행들도 이에 동조하였고 따라서 프랑스은행들은 엄청난 예금인출 사태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를 비롯하여 다방면으로 정치 경제적 압력을 가해 결국 프랑스는 제압당해 버렸다고 한다. 역시 미국에게 개기면 안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얻었다. ㅎㅎ

"화폐를 장악하라. 그러면 전 세계를 장악할 것이다."라는 헨리 키신저의 인용문을 보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집단에 대한 고발차원에서 이 책을 집필했다라는 윌리엄 엥달의 의도와는 다르게 난 이 책을 읽은 후, 그들이 가진 권력이 더욱 무서워 졌다. 과연 언제까지 미국의 헤게모니와 달러의 세뇨리지가 유지될 지 알 수는 없으나, 저자인 윌리엄 엥달은 로마의 예를 들면서 미국의 시대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을 남기고 있다. 과연 그 시대가 언제나 올런지 모르겠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