숯불갈비김밥 @불스숯불김밥

집이 도봉산역 근처라 북쪽으로 한 1km만 가면 의정부시가 나오는데, 서울 경계를 넘어 갈 때는 마치 비행기라도 타는 양 큰 결심이 필요하다. 왜 이런 바보같은 지리개념이 없어지지 않는 지 잘 모르겠다. 이런 이상한 지리개념 때문에 의정부쪽으로 가는 일은 정보처리기사 자격증 받을 때와 예비군훈련 받을 때 말고는 없었는데, 의정부역사에 신세계백화점이 들어서고 그 안에 CGV가 입점하게 되면서 의정부시가 조금씩 친숙해지고 있다.

CGV 의정부점에 들르기 전에 간단히 끼니를 해결할 요량으로 미리 김밥집을 찾아 보니, 바르다김선생은 보이지 않고 고봉민김밥인은 다소 떨어진 곳에 있는 반면 불스숯불김밥이라는 곳이 비교적 의정부역 근처에 위치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인터넷에서 평이 그리 많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마케팅의 향기가 풍기지 않는 블로거들의 잔잔한 칭찬글이 몇 개 보이길래 방문해 보기로 하였다.

참신하지만 세련되지 못한 간판이 걸려 있고, 들어 가보니 테이블이 두 개 밖에 없다. 그런데, 문전박대를 당할 뻔했다. 지금 배달과 포장만 가능하다고 한다. 그냥 저녁을 간단하게 해결할 요량으로 영화 시간에 맞춰 상당히 빠듯하게 온 것이라 플랜B가 없어서, 여기 앉아서 금방 먹고 가면 안되겠느냐고 사정하면서 메뉴판에서 미리 알아온 메뉴인 숯불갈비김밥을 가리키니 김밥을 썰기 시작한다. 다행이다. 김밥이 서빙될 때 물으니 일요일은 원래 가계를 잘 열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같은 메뉴에 4,000원짜리와 2,500원짜리가 있는 것을 보고 물어보니, 2,500원짜리는 작은 것이라고...

플레이팅이 세련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다. 원래 장사 안한다는 것을 사정해서 먹고 가는 것이라 그런 불평할 것이 없다. 에어콘도 안틀어 놓아 살짝 온도가 높은 상태였지만 역시 불평할 상황이 아니다. 김밥 꼬다리는 별로 안좋아해서 마지막에 남겨 놓고 배가 안찰 때만 먹는 관계로 젓가락으로 살짝 젖혀 두고 사진을 하나 찍어 보았다. 속이 알차다. 김밥 속을 둘러 쌓고 있는 밥은 적고 속이 많은데, 속 중에서도 숯불갈비가 반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한 입 먹어 보니 정말 고기를 씹을 때 숯불향이 난다. 숯불향을 내는 방법은 다양하고, 그것이 인위적이든 정말 숯불을 이용했든 크게 개의치는 않는다. 김밥에 숯불향이 나는 고기를 속으로 사용한다는 아이디어가 기발하다. 이 숯불향이 강해서 다른 속의 맛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

김밥이라는 것이 자주 먹으면 질리지만 바쁠 때 종종 먹기에는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고, 맛이 이렇게 획기적이면 더할 나위가 없다. 그래서, 의정부역 근처에 갈 일이 있는데 시간에 쫓길 때는 불스숯불김밥을 가기로 하였다. 다음에 들를 때는 숯불갈비가 들어 있는 다른 김밥도 먹어볼 예정이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