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정

김지운감독의 작품에 대해서 내가 인식하고 있는 것은 그저 어두우면서도 화려한 영상미를 잘 표현한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약 10년전 개봉한 달콤한 인생 때문에 그런 인식이 박힌 것같은데, 그래서 이번 밀정이 여러 모로 스토리에 헛점이 많이 보인다라는 평에도 불구하고, 화면빨은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극장행을 주저하지 않았다.

영화를 보고 나와서 느꼈던 점은 이야기의 허점이 많다라는 평에 대해 수긍이 가면서도 어찌 보면 이것이 모두들 아는 이야기를 다룬다는 전제를 깔고 과감한 생략을 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인에게 일제치하의 역사를 다룬 영화를 편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쉽지 않은 만큼, 그런저런 이야기를 과감하게 생략하며 각 캐릭터들이 시대적인 상황에 대해서 어떤 스탠스를 취하겠다는 것만 대사 몇 마디로 정리해버리는 것은 오히려 좋은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지운 감독의 특기라고 할 수 있는 퀄리티 있는 영상미는 그리 다이나믹한 액션씬이 등장하는 것이 아님에도 잘 드러난다. 이러한 영상미가 무거울 수 밖에 없는 시대를 다뤄야 하는 부담감이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을 완화시켜 준다.

송강호의 뻔뻔한 연기는 여전하다. 일제의 압잡이 노릇을 하면서도 살다보니 그렇게 되었다는 듯이 슬쩍 관객들을 납득시켜 버리는 것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배우가 이 역할을 맡았다면 초반에 정말 많은 욕을 먹을 것같은데, 송강호는 그렇게 밉지가 않다. 다른 흥미로운 점은 이병헌이 까메오로 나온다는 점이다. 김지운감독과 쌓인 친분이 상당하다고 추측할 수 잇다. 그리고, 한지민은 배역의 비중이 생각보다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참 다양한 배역의 스펙트럼을 소화할 수 있음을 과시했는데, 평소에는 천진난만 한 표정이다가도 갑자기 진지해지고 때로는 스모키 화장만으로 표독스러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