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러와 마이홈, 9일째

추석연휴 첫날, 텔레그램에서 웹디동 그룹채팅을 하다가 우연히 놀러와 마이홈이라는 모바일게임을 알게 되어 미친듯이 빠져들면서 기나긴 연휴를 정말 열정적으로 보내 버렸다. 재작년에 클래쉬 오브 클랜을 즐긴 이후로는 게임에 시큰둥 했었는데, 갑자기 불타올라 9일만에 25레벨이 도달했다.

놀러와 마이홈은 자신의 공방을 차리고 조금씩 발전해 나가면서 공방 인테리어나 캐릭터 의상을 꾸미는 것이 목적인데, 공방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다. 왠만한 가내수공업은 물론 농축산업을 비롯하여 광업까지 커버하는 게임이다. 아마도 예전 웹브라우저에서 플래쉬로 즐겼던 팜빌Farmville과 가장 유사한 컨셉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놀러와 마이홈은 농사가 주목적이 아니라 크래프팅이 주목적이라는 것이 차이점이다.

심이누나가 이미 이 게임을 시작하면 공방노예가 된다는 경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난 시작부터 빠져들었다. 이 게임은 소셜네트워크게임이라는 장르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내가 꽂혔던 것은 이 게임이 경제/경영 시뮬레이션 게임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어찌보면 시드마이어의 문명 시리즈나 좀 더 클래식 게임인 세틀러 시리즈 등에서 전쟁개념만 제거했다라고 보면 된다. 난 전쟁에 별로 소질이 없어서 오히려 전쟁이 없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처음에는 뭔가 여러 재료를 조합해서 핸드메이드 작품을 만들어 낸다는 개념에 빠져들어 누가 쫓아 오는 것도 아닌데 정말 스마트폰을 문지르고 또 문지르며 레벨업을 해나갔다. 레벨이 올라갈 수록 만들 수 있는 음식과 제품들이 늘어난다. 중간에 멈추는 것이 정말 어려울 지경이었고, 밥먹는 시간마저 아까웠다. 식욕을 압도하는 플레이 욕구를 제어하기가 힘들었다. 덕분인지 살짝 소셜미디어 중독이었던 난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접속을 하루에 한번밖에 하지 않게 되었다. 중독은 중독으로 끊는다!

그러다가 시작한 지 일주일 정도 지나니 그 중독성이 서서히 사라져서 정상적인 상태가 되었는데, 스스로의 상태 변화를 곰곰히 생각해보니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번째는 공방의 2층을 오픈시켰다는 것이다. 일정 레벨에 도달해야 특정한 범위를 꾸밀 수 있게 열어 주는데, 빡빡했던 1층을 벗어나 2층에다가 "공방안의 내 방"을 꾸미고 싶다는 욕구가 해소되는 순간 넘치던 열정이 욕구와 함께 사라져 버렸다.

두번째 이유는 놀러와 마이홈의 배경인 포포레스숲내에서의 경제가 노동력을 거의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것이다. 종종 원재료를 가지고 1차가공품을 만들면 1차가공품의 가격이 원재료보다 싸게 거래되고 2차가공품이 1차가공품보다 더 저렴하게 거래되는 현상이 발생하곤 한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현실세계에서는 노동력의 댓가로 현금을 지급받게 되지만, 게임내에서는 경험치라는 것이 더 중요하게 작용하기 때문인데, 말그대로 열정페이가 생각나 정나미가 떨어져 버렸다. 공방노예가 된다는 것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세번째 이유는 너무나 뻔뻔한 퀘스트/의뢰 때문이다. 초반에는 퀘스트를 따라서 여러 가지 제품들을 만들어 보는 것이 재미있다. 그런데, 레벨이 올라가다보면 그 퀘스트/의뢰가 시장가격에 비해서 매우 초라한 보상을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것이 레벨이 올라갈 수록 어렵게 만들어 놓은 것인지 아니면 저레벨에서도 그러했는데 눈치채지 못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예를 들자면, 시장에서 개당 약 7만골드 안팎에 거래되는 클래식 철제 난로 다섯개를 납품하라면서 골드와 경험치는 각각 5만, 2만5천을 주는 퀘스트가 나오곤 한다. 이 퀘스트를 마치려면 35만골드가 드는 셈이다. 그렇다고 직접 제작하면 더 큰 비용의 원재료가 들기 때문에 그냥 사서 납품하고 원재료를 팔아서 충당하는 것이 낫다.

위에서 내가 경제/경영 시뮬레이션이라는 측면에 매료되었다고 했는데, 이 게임이 소셜네트워킹게임으로 분류되는 것은 온라인에 접속하여 여러 사람들과 함께 게임을 한다는 개념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이 실시간으로 같은 장면을 보여 주는 것은 아니고, 각자 공방이 있고, 그 공방에 놀러간다는 개념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더 강력한 기능은 바로 시장이다. 온라인 사용자들끼리 물건을 사고 팔 수 있게 해 놓은 시스템인데, 난 이 시스템 또한 정말 좋아한다.

레벨이 올라갈 수록 점점 꾀가 생겨서 저렴한 제품의 경우나 마진이 잘 안남는 제품의 경우 직접 생산하지 않고 그냥 시장에서 사다 쓰는 경우가 많은데, 이 기능때문에 난 점점 더 제조보다는 유통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즉, 아웃소싱을 넘어서 내가 필요하지 않은 물건도 사서 되파는데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다. 종종 시장가격을 무시하고 최저가로 넘겨버리는 유저도 있고, 재가격을 받으려는데 주문실수를 하는 유저들도 있게 마련이라, 이런 저렴한 매물을 재빠르게 낚아채 정상가로 되파는 재미가 쏠쏠하다. 내가 지금 공방꾸미는 게임을 하는 것인지 현물 트레이딩을 하는 것인지 햇갈릴 정도로 데이트레이딩을 한 적도 있다.

이런 데이트레이딩을 하다가 어이없이 큰 손해를 본 경우도 있었다. 추석이벤트로 여러 가지 추석 관련 제품을 만드는 퀘스트 때문에 시장에는 원재료라고 할 수 있는 "그릇에 담긴 달님 조각"이라는 아이템이 원활히 거래되고 있었다. 시장가격이 1,000골드 안팎으로 형성되어 있었고, 난 위에서 설명한 방법으로 헐값에 나온 매물을 낚아채 정상가에 파는 수법으로 골드를 챙기고 있었다. 마치 주식투자를 하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갑자기 마이홈 측에서 이 그릇 아이템을 각 유저에게 30개씩 무료로 풀어 버린 것이었다. 순식간에 해당 아이템의 가격은 급격히 하락하여 판매최소가격인 180골드에도 팔지 못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이런! 미시경제가 아니라 거시경제였구나! 결국 이 아이템을 처분하지 못하고 추석연휴가 끝나면서 난 달님그릇 99개를 그냥 시스템에 개당 90골드에 일괄 정리해 버렸다. 주식투자에서 정리매매같은 것이다. 그런데, 추석연휴가 끝나도 계속 관련 퀘스트로 나오면서 달님그릇의 가격은 다시 1,000골드대에 형성되기 시작했다. 하아! 창고정리를 조금만 늦게 했더라면...

다만, 데이트레이딩을 주력으로 골드를 모으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상품 매출분에 대하여 10%의 수수료를 부과하기 때문이다. 즉, 슬리피지/브로커리지가 10%라는 의미다. 정말 어마어마한 수수료 아닌가! 처음에는 이것이 부가가치세개념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냥 거래세라고 봐야 한다. 부가가치세 개념이었다면 내가 구입한 상품가격에 대한 매입세액공제를 해줘야 하는데, 그런 것은 없다.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다는 진리가 포포레스숲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이제는 25레벨정도 올라가니 레벨업에 대한 욕망은 거의 사그라든 상태이고, 퀘스트는 따라가되 뻔뻔한 의뢰들은 그냥 다 포기해 버리면서 금속막대기 장사로 골드만 모으는 중이다. 앞으로는 모은 골드로 1층과 2층 공방 꾸미기나 하면서 느린 템포로 게임을 즐길 예정이다.

6년전에 즐겼던 팜빌은 1년넘게 했고, 2년전에 했던 클래쉬 오브 클랜은 세달만에 접었는데, 어쩌면 놀러와 마이홈은 더 짧게 즐기다 접을 것같다. 초반에 너무 뜨겁게 타올랐나보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