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수라

출연한 배우들만 보면 정말 엄청난 대작이 나올 것 같은데, 또 그렇지만은 않은 것이 영화다. 아수라가 딱 그런 영화가 아닌가 싶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상 마케팅으로도 어찌하지 못할 것같다. 개인적으로도 이번 아수라를 포함하여 최근에 본 한국 영화 세 편이 모두 마음에 안든다.

최근 한국영화에서 유독 자주 사용되는 소재는 아마도 일제 강점기의 독립투사, 그리고 부패한 고위층의 범죄가 아닐까 한다. 물론, 전통적으로 사용되었던 로맨스를 제외하고. 그리고, 나름 위의 두 가지 소재를 다룬 영화들이 그럭저럭 흥행을 하면서 비슷한 영화들이 범람하고 있다. 아수라도 바로 부패한 고위층의 범죄를 다룬 영화이다. 진부한 소재이다.

황정민이 정말 연기를 잘 하는 배우라는 사실은 대한민국 국민 99%가 동의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비열한 연기를 가장 잘하는 것같다. 이번 아수라에서 낙후된 지역의 재개발을 위하여 물불을 가리지 않는 박성배 시장역을 맡은 황정민은 왠지 달콤한 인생에서의 백사장이 연상되었다. 그리고, 비열함을 제대로 표현할 줄 아는 또다른 배우 곽도원은 지방대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고 검찰 내부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함정수사를 마다하지 않는 김차인 검사역을 맡았다. 난 그의 연기에서 타짜-신의 손의 장동식이 연상되었다.

위에서 언급한 두 배우가 비열함을 담당하고 있다면, 정우성은 한마디로 설명하기엔 다소 까다로운 캐릭터인 한도경을 맡았다. 경찰이지만 박성배 시장이 지시하는 껄끄러운 일을 해결하는 일에 더 적극적이며, 주수입원도 박성배 시장쪽에서 나오는데, 불치병에 걸린 아내를 열성적으로 병수발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어쩔 수 없이 늪에 빠져 버린 케이스로 설정되어 있는 듯하다. 하지만, 관객들은 정우성의 사슴같이 커다란 눈을 보면 굳이 병수발 하는 아내가 없어도 그를 다 이해해줄 것같다. 살인을 하든 살인교사를 하든 그는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러했을 것같다.

박성배 시장은 한도경을 돈으로 매수하여 계속 자신의 손발 역할을 맡기고 싶어 하고, 그런 박성배 시장을 잡아 구속시키려는 김차인 검사는 권력과 증거로 한도경을 협박한다. 그 사이에 온갖 고초를 겪는 한도경과 마찬가지로 관객들은 꽤 불편한 심정으로 영화가 끝나기를 애타게 기다린다. 중반에 이르면 결말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범위에 들어 온다.

참신한 소재를 찾아서 영화화 하는 것은 많은 리스크를 동반한다. 영화 산업 자체가 정말 엄청난 리스크를 안고 있는 것인데, 여기에 리스크를 더한다는 것은 산업적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바람직하지 않은 결정이다. 그래서, 많은 영화들이 흥행한 영화의 소재를 따라하고 흥행에 성공했던 배우들을 써서 만들어 진다. 그것이 투자 받기도 수월하고 실제로 흥행성적도 좋다. 그렇다면, 기준을 좀 낮춰서 소재가 얼마나 참신한가보다는 진부한 소재를 얼마나 잘 변주했나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아수라의 결말은 예고편만 봐도 예측할 수 있고, 캐릭터들은 지나치게 정형화되어 있다. 결코 잘 변주되지 않았다. 뭔가 이 영화 저 영화에서 짜집기 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차피 상업영화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흥행에만 성공하만 장땡이다. 소재가 진부하든 짜집기를 하든 관객들이 많이 봐주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영화가 참 재미가 없다. 관객들이 많이 볼 것같지 않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