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총리, 긴급현안질문

최순실 사태로 인하여 국정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에서, 긴급현안질문이라는 이름으로 국회에서 행정부에 대한 소환같은 것이 있었나보다. 이전에도 대정부질문이라든지 국정감사라든지 행정부 관료가 국회에 나와서 당하는 상황을 종종 연출하곤 하는데, 이번에는 사안이 심각해서 긴급현안질문이라는 이름으로 황교안 총리와 각부 장관들이 국회에 참석하여 국회의원들의 질의를 받았다.

내가 국회TV를 하루종일 시청하고 있었던 것은 물론 아니고, YouTube에 접속하니 추천형식으로 올라온 영상들을 보다가, 정부 관료들이 당하는 꼴을 보면서 통쾌함을 느낄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오히려 황교안 총리의 경의로운 대응능력에 감탄을 하여, 부족한 정치적 식견에도 불구하고 각 질의에 대한 평을 남겨 보고자 글을 써본다.

https://youtu.be/s-lIiW5k00k

우선 박영선 의원의 영상을 가장 먼저 보게 되었는데, 전반적으로 박영선의원은 황교안 총리를 향해 무능하다거나 간신배라거나 꼭두각시라거나 하는 등 정제되지 않은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자존심을 긁어 황총리를 도발하였으나, 황총리는 상당히 무표정한 표정으로 사실과 다르다거나, 과한 말이라거나, 검찰에서 철저히 조사중이라거나, 그렇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이다 등으로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렸다. 나중에는 박영선 의원이 분에 못이겨 제대로 된 질의 응답이 나오지 못했다. 박영선 의원은 조윤선 문화체육부 장관도 불러서 아까보다 더 강하게 밀어 붙였지만, 조윤선 장관에게도 흡집하나 내지 못했다. 괜히 빅뱅이랑 사진찍었냐는 둥 품격 떨어지는 질문만 해서... 난 이것이 법조인 출신 행정부 관료에 대한 기자출신 국회의원의 한계라는 생각이 들었다.

https://youtu.be/-_mszxDbZQ4

송영길 의원은 특유의 거친 입담으로 밀어 붙였다. 거의 답변할 기회조차 주지 않으며 질의보다는 호통과 힐난으로 시간을 소모했는데, 난 송영길 의원의 이러한 스타일의 말투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유일하게 황교안 총리의 도발에 성공하였다. 황교안 총리는 의원님은 최순실을 아시냐며 되물으며 잠시 평정심을 잃는 듯 했지만, 딱 그 한 번 뿐이었다.

https://youtu.be/Mopj79RO1yM

이재정의원은 김어준의 파파이스를 보면서 알게 된 국회의원인데, 역시 잘나가는 변호사였고, 엄청난 수준의 언변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황교안 총리의 능구렁이같은 대응에 초반부터 부들부들하면서 흥분하여 주어진 시간을 너무 많이 소모해 버린 것이 아쉬웠다. 다른 의원들이 별다른 소득없이 물러난 것을 보았는지 여러 가지 다른 스타일, 예를 들면 증거로 가지고온 문서를 총리에게 툭 던져준다던지, 눈싸움을 건다던지 하는 방식으로 대응을 해보았으나, 황총리는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까마득한 후배 법조인의 격앙된 공격을 느긋하게 흘려 보냈다.

https://youtu.be/c8dyc57fwNE

마지막으로 본 것은 노회찬 의원의 영상이었다. 노회찬 의원은 위에 언급된 국회의원보다는 훨씬 신사적으로 황교안 총리를 대해 주었다. 그렇다고 질의가 느슨한 것은 아니었는데, 지금 이 사태는 박근혜 대통령의 잘못이 큰가, 황교안 총리의 잘못이 큰가라는 질문은 단순하면서도 함축된 의미가 큰 질문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황교안 총리는 0.5초정도 생각을 하더니 총리의 잘못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며 노회찬 의원이 만든 함정을 쉽사리 피해 버렸다. 엄청난 뉴스가 될 뻔한 질문이었는데, 아쉽다. ㅋㅋㅋ

일반적인 상황이라도 총리나 장관이 국회에 불려가서 질의를 받는 것은 꽤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분명하다. 더군다나 작금의 상황에서는 훨씬 심할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되받아 치는 것도 허용되지 않는다. 비유하자면 적국의 진지에 칼자루 하나 없이 방패만 들고 들어간 상황이다.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황교안 총리가 약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연민이 생겨 버리고 말았다.

이 사태에 대한 분노의 감정믈 잠시 덜어 놓고 이야기 하자면, 황교안 총리는 총리로서의 포괄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으나, 황 총리 자신이 지금의 사태에 적극 가담한 것도 아니고 본격적으로 일할 기회가 있었던 것도 아니며 더군다나 곧 물러날 일만 남은 사람이다. 그러니 무능하다거나 부패의 원흉이라는 말을 들으면 화가날 법도 한데, 어쩌면 저렇게 감정을 절제하고 신속하게 공격을 회피해 나갈 수 있는지 참으로 감탄이 절로 나온다. 쉽게 흥분하고 감정 절제에 어려움을 겪는 나로서는, 그래서 적장(?)이라도 황교안 총리를 인정해주고 싶다.

결론적으로, 이번 대정부질문이 그다지 실질적인 소득을 거두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국회의원들 또한 정부 관료들이 나와서 뭔가 새로운 사실을 터뜨려줄 것이라는 기대를 한 것 같지는 않다. 이 사태의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미 검찰에 불려가 수사를 받고 있는 중이고, 국회로 불려 나온 사람들은 노회찬 의원이 언급한 것과 같이 그냥 껍데기에 불과한데, 껍데기들에게 질문을 한다고 사실이 밝혀질 것도 아니다. 그저, 국회가 열일 하고 있다는 것을 국민에게 어필하고자 만들어진 자리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왠지, 다 끝나고, 국회의원들과 황교안 총리가 만나서 웃으면서 수고하셨다, 질문 매서웠다 이러면서 서로 덕담하고 잘 헤어지는 광경이 상상된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