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국립 오르세미술관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오르세미술관전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서 전시회가 열린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인상주의 작품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한국인들의 취향에 맞아서일까, 인상주의 작품들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오르세미술관은 루브르박물관 만큼이나 한국인에게 친숙하고, 그래서 미술관 이름을 따서 전시회명을 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오르세 미술관전이다.

사실, 난 오르세미술관전을 이전까지 딱 한 번 방문했다. 오르세 미술관을 직접 다녀 왔다는 이유로, 또는 여러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는 것 보다는 한 작가만을 주제로한 전시회를 선호한다는 이유로 한국에서 열리는 오르세 미술관전을 애써 외면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왠지 가보고 싶었다. 워낙 유명한 작품들이 많이 온다는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슨 작품이 오는지 세세하게 확인하고 전시회를 방문한 것은 아니어서, 정말 유명작품이 오는지 약간 의심어린 심정으로 전시회장을 들어섰다.

최근에, 추상미술 위주의 전시회를 자주 가다보니 작품이해에 애로사항이 많았고, 심지어 전시회 가는 것이 스트레스로 느껴질 정도였는데, 오랜만에 생각없이 작품의 심미성에만 집중해서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그림들을 보니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왜 미술계는 점점 더 추상에 매달리는지... 왜 대중과 점점 더 멀어 지려 하는지... 물론, 이유는 알고 있다. 못알아 보게 그려야 작품이 잘 팔리기 때문이다. 대중이 그림을 사주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렇지만, 그림을 사줄 수 없는 서민으로서, 미술계가 추상주의로 치우치는 모습은 그저 안타깝다.

다시 오르세 미술관전 이야기로 돌아와서, 꽤 유명작들이 많이 등장해서 놀랄 정도이긴 하지만, 가장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바로 르누아르가 그린 "피아노 치는 소녀들"이었다. 파리여행길에 오르세 미술관에서 직접 보기도 하였고, 다른 버전의 그림을 오랑주리 미술관에서도 보기도 하였지만, 9년만에 다시 보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르누아르 특유의 화사함과 인상주의 작품인듯 그렇지 않은 듯 경계에 있는 스타일 또한 작품 곁을 떠나고 싶지 않게 만든다.

난 주로 오디오가이드를 통해서 관람을 했지만, 도슨트 스케줄이 겹쳐서 잠시 설명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피아노 치는 소녀들"이 유화만 해도 다섯 가지 버전이 있다고 한다. 내가 알고 있는 두 가지 버전 이외에 나머지 세 가지는 어디에 있는 지 궁금하다. 참고로, 오르세 미술관에 있는 버전과 오랑주리 미술관에 있는 버전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오르세 미술관 버전은 피아노 위에 꽃병이 있고, 오랑주리 미술관 버전은 꽃병이 없다는 것이다. 이번에 한국에 온 것은 당연히 꽃병이 있는 오르세 미술관 버전!

두번째로 꽂혔던 작품은 윌리앙 부그로William Bouguereau의 "포위"였다. 흔히들 윌리엄 부게르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프랑스인이니 프랑스어로 쓰는 것이 옳바른 표현이 아닐까 한다. 예전 싸이월드가 대세로 자리잡고 있을 때 스킨으로도 꽤 유명했었는데, 이번에 온 "포위"는 아리따운 소녀를 큐피드들이 둘러 쌓고 있는 장면이다. 윌리앙 부그로는 사진의 발명 이후 충격을 받은 미술계가 인상주의나 탈사실주의로 흐르는 가운데서도 아카데미 스타일의 사실주의에 입각한 작품들을 선보이면서 나름의 호평을 받은 작가이다. 이번에 전시된 "포위" 말고도 그의 작품들을 참 좋아라 하는데, 이번 전시회에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그리 유명하지는 않지만, 밀레와 함께 자연주의 화가로 활약한 카미유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의 작품들도 있었다. 그의 전형적인 스타일, 즉, 다소 어둡지만 신비로운 느낌이 드는 숲에 몇 줄기의 빛이 들어와서 신비감을 더해주는 풍경을 담은 작품들을 보니 참으로 반갑다. 미술사적으로 그가 주목받지는 못하는 듯하지만, 난 개인적으로 밀레보다도 그의 작품들을 더 좋아한다. 9년전에 오르세 미술관에서 책으로만 보던 그의 작품들을 보면서 상당히 설레였던 기억이 나는데, 이번에도 살짝 그러했다.

밀레의 "이삭줍기"나 반 고흐의 "정오의 휴식"이 아마도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주목받겠지만, 난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 작품들만으로도 상당히 만족스러웠던 전시회였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