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노동의 역습』 크레이그 램버트

2016년에는 흥미로운 책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이번에 읽은 『그림자 노동의 역습』 또한 노동을 바라보는 관점이 꽤 신선한 책이다. 별 생각없이 하게 되는 일상에서의 자질구레한 일들이 어쩌면 의도적으로 누군가가 조금씩 나누어 주는 노동일 수도 있다는 경고(?)는 심지어 섬뜩함을 느껴지기도 했다.

저자인 크레이그 램버트가 『그림자 노동의 역습』을 통하여 언급하는 그림자 노동의 종류는 워낙 다양해서, 정리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그래서, 책이 좀 산만하다는 느낌도 있다. 또한, 일부의 예시는 그다지 공감가지 않는 부분도 있다.

가장 일반적인 그림자 노동의 예로 등장하는 것은 역시 가사 노동이다. 지난 수백년간 주로 가족 중 여성 멤버들이 담당해 왔던 가사 노동은 댓가를 지급받지 못하는 노동이었다.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여전히 많은 여성들이 가정에서 댓가를 지불받지 못한 채로 가사노동이라는 그림자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저자는 이에 더해서 여성이 일터에서 낮은 지위에 머무르는 것은 가사와 육아 등에 에너지를 쏟느라 업무에 최선을 다하지 못할 것이라는 고용자의 우려가 가장 큰 요인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나 또한 이에 동의하기도 하고, 이미 저자 말고도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내용이라 그리 새롭지는 않았다.

레스토랑의 시스템이 점점 손님으로 하여금 그림자 노동을 하게 만든다는 내용은 평소에도 내가 자주 생각했던 내용이라 공감이 갔다. 일반적으로 웨이터/웨이트리스가 시중을 드는 레스토랑과 비교해서, 최근에 생겨난 푸드코트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적용하고 있는 시스템에서는 인간과 인간의 접점이 점점 사라지고, 기계가 많은 부분을 담당하며, 따라서, 손님들은 기계에 익숙해져야 하고 여러 가지 자질구레한 일들을 스스로 해야 한다. 실제로, 예전에는 카페에 가면 웨이터/웨이트 리스가 와서 주문을 받고 커피를 가져다 주었지만, 스타벅스 등의 카페가 유행을 탄 이후에는 손님이 직접 가서 주문을 하고, 심지어 먹은 커피잔과 쟁반 등을 처리해야 한다. 더 놀라운 것은 손님들이 이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나 또한 그 비싼 커피를 마시면서도 이에 대해 그다지 불평을 하지 않았다. 10여년 전에 분식집에서 왜 물이 셀프냐며 화를 냈던 기억이 떠올라 피식했다.

저자가 그림자 노동을 해야 하는 레스토랑이 점점 늘어나는 점에 대해서 지적하려는 바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난 이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소비자 입장으로 한정한다면 긍정적인 점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점점 기계와 컴퓨터의 성능이 우수해 지면서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고 었으며, 이것은 너무나 효율적이어서 똑같은 일을 사람이 하려면 상대적으로 비싼 비용이 든다. 하지만, 여전히 시간과 돈을 더 투자하면 고전적인 스타일의 시스템을 유지하는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웨이터/웨이트리스의 시중을 받으며 느긋하게 식사를 즐길 수 있으니, 그저 시간과 돈을 절약하는 새로운 옵션이 생겼다고 생각하면 될텐데, 저자는 이것이 불만인가 보다. 왠지 저자인 크레이그 램버트가 꼰대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로 든 여러 가지 그림자 노동 가운데 내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대형할인점이 우리에게 시키는 그림자 노동이다. 물론, 아주 오래전 수퍼마켓의 시스템이 생기기 전에, 주인이 직접 하나하나 손님이 원하는 물건을 집어다 주는 시스템에 비해서 우리가 카트를 끌고 원하는 물건을 찾으러 다니는 지금의 시스템이 더 많은 그림자 노동을 야기한다는 점은 평소에도 생각했던 바이고, 그래서 전적으로 동의한다. 마트에서 쇼핑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내가 생각치 못했던 것은 따로 있다. 바로, 많은 물건을 사게 만드는 점이다.

대형 할인마트가 광범위하게 퍼져 나간 이후에 우리는 자연스레 한꺼번에 더 많은 물건을 사게 되었다. 그로 인하여 생기는 그림자 노동은 집안에 더 많은 물품을 보관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엄밀히 말하면, 그림자 비용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릴 것같긴 한데,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유통업체가 점점 고객의 집을 상품 창고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꺼번에 많은 상품을 사면서 유통업체가 내 집을 창고로 사용한다는 생각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과연 한꺼번에 많이 사서 다소 저렴하다고 기분 좋아 해야 하는 것인지 갑자기 의문이 들게 만드는 책이다.

이 외에 저자가 지적한 흥미로운 그림자 노동은 바로 데이트였다. 예전에는 양쪽을 잘 아는 중매쟁이가 중매를 섰지만, 요즘은 데이트앱을 이용하는 시대가 되었고, 중매쟁이 대신 본인들이 직접 자신에 대한 정보를 앱에 입력해야 한다는 점에서 저자는 데이트가 점점 그림자 노동이 되어 간다고 지적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책의 내용을 언급하자면, 무료로 사용하는 소셜 미디어 서비스가 있다.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누르는 것도 그림자 노동 중 하나이다. 스스로 광고주들이 알고 싶어하는 데이터를 직접 사용자들이 입력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를 지적하면서 저자는 오래된 격언을 언급한다. "상품값을 내지 않고 있다면, 당신이 바로 그 상품이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