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픽사를 위시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은 이미 3D로 넘어간 지가 오래되었다. 반면, 일본은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의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3D의 현실감도 좋지만, 이런 일본 스타일의 애니메이션도 나름의 운치가 있어서 좋아한다. 특히나, 이번에 본 "너의 이름은."은 수채화같은 유려한 색감이 참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곳곳에 등장하는 섬세한 디테일은 존경스러울 정도이다. 이 정도는 되야 살아 남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남녀의 몸이 바뀐다는 소재는 특별하긴 하지만 이미 여러 번 사용된 바 있어서 진부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 만화적 상상력이 가미된 좀 더 복잡한 설정, 즉 다른 시공간의 남녀가 바뀐다는 설정은 그나마 좀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리 큰 기대를 한 것은 아니었는데, 소재의 진부함도 그러했지만, 개봉 시기도 다른 국가들에 비해 상당히 밀려 2016년 중반에 개봉되어야 할 영화가 지금에서야 개봉되는 상황이라, 한국 관객들의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내 취향이 평균적인 한국 관객들의 취향과 비교하면 다소 유별난 경향이 있긴 하지만...

위와 같은 낮은 기대치와는 달리, 극장을 빠져 나온 후에도 긴 여운이 남았다. 참 잘만들었다. 다른 국가들과 같이 2016년에 개봉했더라면 라라랜드에 이은 두번째로 감동적인 영화로 꼽을 정도다. 왜 이제서야 개봉을 했나 싶다. 이렇게 좋은 작품을 이제서야 개봉한 것은 분명 배급사의 판단미스다.

스토리의 힘이 강하다. 시공간이 다른 두 남녀가 종종 상대의 바뀐 삶을 살아가면서 티격태격 하는 과정과 주변인들에게 호감과 반감을 사는 갖가지 에피소드가 소소한 재미를 준다. 이런 소소한 재미를 느끼면서 서서히 캐릭터에 몰입하게 되고, 그래서 미츠하를, 더 나아가 미츠하의 마을을 구하고 싶다는 타키의 심정이 전정성 있게 전달된다. 또한, 시공간의 단절을 초월한 짧은 만남과 이 기억을 잊지 않으려는 필사의 노력에서 애절함이 느껴졌다. 난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캐릭터에 몰입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데, "너의 이름은."에서는 그것이 된다.

난 지브리 스튜디오 스타일, 예를 들자면 인간 보다는 요괴나 동물들이 이끌어 나가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반면, 인간이 주로 등장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너의 이름은."을 보면서 그것이 편견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앞으로 신카이 마코토 작품은 조건없이 예매할 예정이다. 그리고, 시간이 된다면 그의 과거 작품들도 종종 감상해볼 생각이다.

앞으로 빨간 머리끈 맨 여자만 봐도 미츠하가 생각날 것같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