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그노 UMN-155-38

모든 기록을 디지털로 보관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이후 필기할 일이 거의 없지만, 최근들어 필기를 하면 아이디어가 잘 떠오른다는 느낌을 받고 있어서, 뭔가 일이 잘 안풀리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필요로 할 때 혼자서 브레인스토밍 하면서 필기를 하곤 한다. 또한, 임시로 기록하는 내용의 경우에도 손으로 직접 메모를 하는 쪽으로 다시 습관을 바꾸고 있다.

세필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항상 하이테크를 주력으로 사용해 왔는데, 한 때 사라사로 외도를 했지만 쓸수록 굵어지는 라인으로 인하여 다시 하이테크로 전향해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계속 써오던 하이테크 0.4mm 블랙의 펜촉이 망가져서 동제품을 사려다가 또 외도를 하고픈 생각이 들어 여러 모로 알아본 결과 요즘은 하이테크 말고도 좋은 펜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중에서 선택한 것은 시그노 유니볼 시리즈였다. 디자인에 따라, 또 펜촉의 지름에 따라 다양한 제품이 있는데, 내가 선택한 녀석의 모델명은 UMN-155-38 이다. 촉을 캡으로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똑딱이가 달린 제품이다.

만족도는 블랙과 다른 컬러들이 좀 다르다. 블랙의 경우 기존 하이테크 0.4mm와 거의 유사한 필기감을 보여 준다. 내가 구입한 시그노 펜 역시 0.38mm이니 이론적으로는 비슷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펜의 필기감에는 여러 가지 변수가 많으니, 꼭 펜촉의 지름이 비슷하다고 필기감이 비슷한 것은 아니다. 아무튼, 이질감없이 거의 하이테크의 반값으로 비슷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반면에, 다른 컬러들은 0.38mm보다 조금 두꺼운 지름으로 사는 것이 더 나을 뻔했다. 아무래도, 블랙으로 필기를 하고, 다른 펜들은 강조할 때 쓰는 경우가 많은데, 0.38mm로는 뚜렷하게 강조가 잘 안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내가 선택한 컬러 세 가지 베이비핑크, 라이트블루, 라임그린 모두 그리 진한 색상은 아닌지라 더욱 그러하다. 또한, 이 세 가지 색상이 블랙과의 매칭은 다 만족스러운데, 이 세 가지 색을 같이 써보니 참 촌스럽기 짝이 없는 조합이다. 항상 따로 써야 겠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