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킹

더 킹은 특별히 예고편을 본 것도 아닌데, 그저 조인성, 정우성 주연이라는 사실만으로도 극장에 가기 충분했다. 얼마전 정우성이 출연한 아수라를 보고 실망을 하긴 했지만, 왠지 조인성와 정우성의 투톱은 색다른 재미를 줄 것이라는 근거없는 희망을 갖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희망은 그럭저럭 현실이 된 듯하다. 영화가 재미있다.

재미있는 영화라고 했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그리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영화일 수도 있다. 그저 국민들이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정치 세태에 관심이 쏠려 관객 확보에 애를 먹고 있는 상황에서, 아예 정치 영화가 등장한 것이 잘 먹혀 들었다. 시류를 잘 탔다는 뜻이다.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여 개봉하기 까지는 시간이 꽤 걸리니, 영화 제작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가진 누군가가 지금의 상황을 예측했다면 상당힌 식견이 아닐 수 없다. 그냥 운이 좋았나? ㅎㅎ

검사들 내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검사들이 정치권에 어떻게 반응하는 지에 대한 이야기가 주요 내용이라, 영화를 통해서 검사들의 세계에 대해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몇 가지 알게 되었는데, 그중 가장 의외였던 것은 경제사범이나 정치사범을 다루는 특수직은 1% 밖에 안되고, 나머지 99%의 검사들은 그저 공무원으로서 온갖 자잘한 사건들을 처리하느라 과중한 업무에 시달린다는 사실이었다. 그 어려운 시험을 통과해서 검사가 되었음에도 갈 길이 멀다니...

현대사를 낡은 필름을 돌리는 형식으로 훓어 준다는 측면도 더 킹의 특징이다. 그래서, 뭔가 다큐멘터리같은 느낌도 든다. 마치 선관위에서 만든 홍보 영상같달까... ㅎㅎ 시대의 흐름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의 결말 또한 다소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름 신선한 결말이라는 평이 나올 수도 있겠으나, 조금 더 이른 타이밍에 끝냈다면, 좀 더 기억에 남는 영화로 평가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나의 영화 취향이 국내 관객들의 취향과 점점 괴리되고 있는 상황이니, 흥행여부와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다.

남성 관객들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엄청난 여성팬층을 보유한 두 스타의 출연을 감안하면 여성 관객들의 수도 무시 못할 수준이라고 예측되는데, 영화가 어찌되었든 이 두 스타들을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본전을 할 것같다. 특히나, 조인성은 아무리 촌스러운 옷을 입어도 조인성이라는 사실에 새삼 감탄이 나왔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