퓨전 국수요리 전문점, 사발

오래간만에 웹디동 사람들과 저녁을 함께 했다. 심이누나는 작년 12월에 봤는데, 민웅형까지 세 명이서 함께 본 건 오랜만인 듯하다. 민웅이형이 속이 별로 안좋다며 따뜻한 국물이 괜찮겠다고 선택한 곳이 광화문 광장 뒷편 경희궁의 아침에 위치한 사발이라는 퓨전 국수요리 전문점이었다.

경희궁의 아침 3단지에 들어서니 일요일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은 상태이다. 주상복합에 있는 가게들도 일요일에 문을 닫을 줄은 몰랐다. 그래도, 상가 내부 배치도를 보면서 사발이라는 음식점을 찾아 내었고, 다행스럽게도 영업을 하고 있었다. 이 추운 날씨에 나가서 다른 음식점을 찾을 생각을 하니 끔찍했는데...

자리가 있는데도 음식점 밖 복도에서 대기하라고 하여 살짝 뾰루퉁해져서 기다리니 얼마 안되어 민웅형이 도착했고, 곧 자리를 배정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곧 심이누나가 도착하였다. 물 대신 따뜻한 결명자차가 나와서 반갑다. 보리차였나? 그런데, 의외로 에피타이저로 제공되는 호박죽은 차갑다. 뭐지?

주문을 위해 메뉴판을 보니 메뉴 하나하나의 이름이 엄청나게 길다. 음식 이름에 들어간 재료를 다 갖다 붙인 듯하다. 고심끝에 내가 선택한 메뉴는 "능이버섯 닭곰탕 흑미 국수", 민웅형은 (아마도) "목이버섯 죽순 국수"였고, 심이누나는 국수 먹기 싫다고 "소고기 가지 마파두부 덮밥"을 주문했다. 심이누나가 국수를 싫어 했었나? 그리고, 샐러드로 "특제 참깨 드레싱을 곁들인 치킨 햄프씨드 샐러드"도 주문했다. 내가 이제까지 먹어본 샐러드 중에서 가장 이름이 긴 것같다. 심이누나가 "사장님 맘대로 옛날 떡볶이"도 주문하려 했으나, 떡볶이 재료가 떨어져서 안된다고... 떡볶이 재료가 떨어져서 주문을 거부당하는 경험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특제 참깨 드레싱을 곁들인 치킨 햄프씨드 샐러드"는 아마도 내가 3년내에 먹어 본 샐러드들 중에서 가장 맛있었던 샐러드가 아닌가 싶다. 앞으로도 이 맛을 능가하는 샐러드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같다. 닭가슴살은 부드러웠고, 각종 견과류, 특히 해바라기씨가 듬북 담겨 있으며, 특제라고 하는 참깨 드레싱이 이렇게 고소할 수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재료로만 샐러드를 만들었으니 안좋아할 수가 있나! 내가 해바라기씨에 대한 강렬한 욕망을 드러내는 것을 보며 햄스터과라며 심이누나가 놀린다.

국수에 대한 평가는 "고급스럽게 무난하다" 정도가 될 듯하다. 내가 선택한 "능이버섯 닭곰탕 흑미 국수"는 일반적인 잔치국수같은 느낌인데, 멸치 베이스가 아니고 닭육수 베이스라 시원한 맛 보다는 고소한 맛이 강하며 국물이 고급지게 기름지다. 함께 들어간 능이버섯의 향이 살짝 느껴진다. 난 표고버섯 향을 기피하는 편인데, 능이버섯의 향은 괜찮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부추향이 너무 강하여 능이버섯의 향을 만끽하는데 방해가 된다는 점이 오히려 아쉽다. 정성껏 올려 놓은 고명을 살짝 벗겨 내면 이름에 나와 있듯이 흑미로 빚은 국수가 등장하는데, 메밀국수와 크게 다른 것을 모르겠다. 난 메밀국수도 좋아하지만 따뜻하게 먹기보다는 시원하게 먹는 메밀국수에 익숙하다 보니 메밀국수를 따뜻하게 먹는 기분이었다.

반면에, 민웅형은 소화가 안되서인지 맛이 없어서인지 "목이버섯 죽순 국수"를 깨작깨작 하였고, 심이누나 또한 선택한 "소고기 가지 마파두부 덮밥"을 두고 비주얼도 별로고 맛도 별로라고 폄하했다. 맛을 볼까 했는데, 나 또한 별로 맛보고 싶은 비주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제육덮밥에 풀떼기만 듬뿍 올려 놓은 모양새다. ㅋㅋㅋ

이외에 우리가 주문했던 샐러드 드레싱과 같은 것으로 추측되는 소스로 드레싱을 한 락교가 참 맛있었다. 새콤한 락교에 고소한 드레싱이 첨가되니 이렇게 조화로울 수가 없다. 우리가 먹은 것중에 샐러드 다음으로 맛난 녀석이 이 락교였다. ㅋㅋㅋ 그 외에도 반찬으로 나온 녀석들이 정갈하고 마음에 들었다.

가격이 바싸다는 평이 많은데, 주로 한식으로 분류되는 국수 종류들이 저렴한 가격이라 상대적으로 비싸다고 인식되는 것같다. 사발의 메뉴들은 같은 국수 메뉴라 해도 손이 많이 가고, 제법 값이 나가는 재료들을 사용했으며, 인테리어 또한 고급스럽다. 이 정도 가격은 받을 만 하다고 본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