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택트

컨택트라는 제목을 보고, 조디 포스터Jodie Foster가 주연한 97년작품 컨택트Contact가 떠오른다. 그것도 외계인과 조우하는 영화였는데, 하도 오래전에 봐서 내용이 잘 기억나진 않고, 다만 조우한 외계인이 월등한 과학기술을 가지고 인간에게 도움을 주려고 했던 것같다. 아마도 이번에 개봉한 컨택트도 비슷한 이야기가 아닐까라는 추측을 하고 극장을 찾았다. 참고로 이번에 개봉한 컨택트의 원제는 Arrival이다.

대부분의 SF장르에서는 외계인이 그냥 영어를 쓰는 걸로 치부해 버리거나 워낙에 월등해서 영어를 쉽게 알아듣고 구사한다. 아예 하등생명체라서 싸움질만 하는 경우도 있었고, 고등생명체임에도 워낙에 호전적이거나 지구인을 멸시해서 아예 말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경우는 많다. 그런데, 이번 컨택트에 등장한 외계인은 월등한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커뮤니케이션 능력에는 탁월하지 않은 것같다.

외계인과 조우하면서 커뮤니케이션에 이렇게 공을 들인 영화는 또 처음이다. 컨택트는 고등생명체끼리 서로 말 가르쳐주는데 러닝타임을 상당히 소진한다. 외계어 선생님 역할 하려고 지구에 왕림하신 것인지, 고등생명체가 맞기는 한 것인지... 대왕오징어 같이 생겼던데... 그러고 보니 글자도 손에서 오징어 먹물같은 걸 뿜어내서 쓴다.

지구인의 관점에서 이 외계인들이 혐오스러운 외모를 하고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문자체계는 꽤나 독특하다. 오징어 먹물같은 것을 쏴서 원같은 것을 그리는데, 그 원지름에 돌기같은 것이 나있고, 그것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며 원하나가 한문장인 듯하다. 한문장을 먹물질 한 번에 쓸 수 있다니 참으로 유용하다. 다만, 음성 체계는 발달하지 않은 듯하니, 서로 짧은 대화를 하려고 해도 서로 먹물을 뿜어 내야 한다. 수다떨기에 적합하지는 않다. 수다를 안좋아하는 종족임이 확실하다. 그래서, 수다떨 시간에 과학기술만 발전시켰나보다.

어떻게 보면 외계인과 조우했을 때 어떻게 커뮤니케이션 할 것인가가 이 영화의 핵심일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언어학자로 등장하는 에이미 아담스Amy Adams가 거의 원톱으로 영화를 이끌어 간다. 국내에서는 인지도 때문인지 제레미 레너Jeremy Renner 중심으로 마케팅을 하던데, 사실상 그는 조연 수준의 역할에 머무른다.

결론적으로, 난 이 영화가 참 마음에 든다. 어떻게 인간의 알파벳과 전혀 다른 문자체계를 사용하는 생명체와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제기도 꽤나 신선했지만, 이것을 영상으로 잘 표현한 것같다. 이 외계인들의 언어를 상상해낸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외계인이 그냥 영어 쓰는 SF영화들이 꽤나 하등하게 느껴진다. 그나저나, 외계인에게 그렇게 값진 선물을 받고 나면 한치 앞도 못보는 다른 지구인들이 꽤나 하등하게 느껴질 것같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