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 닉 레인

지난 달 이맘때 읽었던 『곤충 연대기』라는 책에서 잠깐 소개되었던 책들이 몇 권 있었는데, 『산소』도 그 중에 하나이다. 『곤충 연대기』가 캄브리아 시대 이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산소』는 캄브리아 시대 보다 조금 이전, 그러니까, 지구에 지금과 같이 산소가 충분치 않았던 시기에 어떻게 산소가 만들어졌는가 부터 시작한다. 뿐만 아니라, 산소가 생명체에서 어떻게 사용되는 지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정말 산소에 대한 엄청나게 다양하고 방대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제목을 쿨하게 『산소』라고 지을 만하다.

상당히 벅찬 내용들로 가득차 있지만, 그래도 정리를 해보자면, 우선 태초의 지구는 산소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대신 물은 있었다. 지구의 공기는 화산폭발로 인하여 지금과 같이 질소의 비율이 가장 높았고, 이산화탄소가 그 다음이었다. 처음 산소가 생성되기 시작하는 것은 물이 태양으로 부터 온 자외선으로 인하여 산소와 수소로 쪼개지는 과정때문이었다. 그렇게 되면, 무거운 산소는 남아서 바닷물의 철과 반응하여 산화되어 버리고 가벼운 수소는 우주밖으로 나가 버린다. 여기까지는 지구나 금성이나 화성이 모두 같다.

그런데, 지구에만 산소가 이렇게 풍부해 진 것은 생명체 또는 유기물들이 광합성을 통해서 산소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즉, 산화되는 속도보다 산소를 생성하는 속도가 더 빨랐기 때문에 조금씩 대기에 산소가 축적되어 온 것이다. 그 시작은 혐기성 생물, 예를 들자면 시아노박테리아 같은 것들이 해저 화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황화수소를 통해서 광합성을 하며 산소 생성에 힘을 보탰고, 조금씩 조금씩 산소의 양이 늘어 나면서 산소를 이용하여 광합성을 하는 생명체들이 늘어 나면서 기하급수적으로 대기중의 산소 비율이 높아진 것이다. 대기중 산소의 비율이 높아지면 산소들이 수소와 반응하여 물이 되기 때문에 물의 손실을 완화할 수 있다. 그래서, 금성과 화성에는 물과 산소가 다 사라져 버렸지만 지구에는 이 둘이 남아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폐름기때는 대기중의 산소가 35%에 육박했다고 한다. 대기중에 산소의 양이 풍부해 지면 생명체들의 크기가 커지게 되는데, 그래서, 당시에는 갈매기만한 잠자리가 흔하게 날아 다녔다. 산소의 양이 풍부해지면 대기가 무거워져서 양력이 커지니 날아다니는 것이 수월했고, 기공을 통해서 호흡을 하는 곤충들 입장에서는 커져도 숨쉬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후, 산소의 양이 줄어들면서 이런 대형 곤충들은 거의 다 사라져 버린다.

여기까지가 지구에 산소가 만들어 지는 이야기고, 그 이후에는 산소에 대한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우리가 호흡을 통하여 산소를 취하는 것은 음식물을 연소시키기 위함인데, 음식물이 몸안에서 연소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노폐물 중에 독성을 가지고 있는 자유라디칼이라는 녀석이 있다고 한다. 책에서는 자유 라디칼이라고 번역되어 있는데, 이 책이 나온 후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활성산소라는 표현이 더 자주 사용되는 것같다. 즉, 이런 유해한 과정이 마치 방사능에 피폭될 때 방사능이 우리 몸에 해를 끼치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면서 공포분위기를 조성한다.

이 활성산소는 화학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이므로 주변 무엇인가로부터 전자 하나를 빼앗아 와서 안정적인 상태가 되려는 욕망(?)이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한다. 그러면, 이 활성산소로부터 전자를 빼앗긴 그 무엇인가가 불안정한 상태가 되어 똑같이 다른 무엇인가로부터 전자를 빼앗으려 한다. 이런 연쇄반응이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이다. 마치, 원자폭탄이나 원자력 발전소의 연쇄반응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럼에도, 생명체가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이에 대한 여러 방어 기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 방어기제에 관련해서 미토콘드리아와 항산화제가 등장한다. 그렇다. 이제부터 노화에 대한 이야기다. 활성산소를 관리하는 미토콘드리아들이 계속해서 힘을 쓰다 보면 결국 망가진 미토콘드리아들이 쌓이게 마련인데, 이것이 바로 노화이다. 이러한 과정을 최대한 지연시키는 것이 항산화제이고, 그 대표적인 것이 비타민C들이다. 그럼에도, 비타민C를 식품이 아니라 약같은 보조제로 섭취하는 것은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한다. 책에는 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이 나와 있지만 쉽게 설명하자면, 우리 몸은 항산화제가 동작하지 않을 때의 백업시스템도 마련되어 있는데, 자꾸 보조제 형식으로 항산화제를 섭취하다 보면 이런 백업시스템이 무력화 된다. 비타민C 무용론에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해서 몇 년 전부터 비타민C 보조제를 먹지 않고 있는데, 매우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이미 난 활성산소의 존재에 대해 어느 정도의 지식은 있었다. 다만 노화의 핵심이 활성산소와 텔로미어의 소진 두 가지 때문이라고 알고 있었으나, 이 책에 따르면 실질적으로 활성산소가 유일한 핵심요인이라고 한다. 텔로미어는 세포마다 필요한 만큼 충분히 있으며, 어떤 세포들은 텔로머레이즈라는 것을 사용하여 텔로미어를 강화시켜준다. 그래서, 텔로미어의 문제로 사망하게 되는 것은 120살 정도라고 한다. 즉, 지금은 활성산소 이슈가 더 핵심적인 노화와 죽음의 열쇠라는 뜻이다.

산소가 이렇게 위험한 물질임에도 불구하고 지구의 생명체들이 혐기성세균들이 아니라 산소를 이용하는 진핵세포를 가진 다세포 생물로 진화의 방향을 잡은 것은 그만큼 산소를 이용한 호흡과 에너지 생성이 다른 방법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구상의 생명체들은 위험하니 피하기 보다는 위험하지만 쓸만하니 일단 쓰면서 위험을 관리하는 쪽으로 진화하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혐기성 생명체들이 존재하지만 그들은 밝은 곳이 아닌 땅속이나 바다밑 어두운 곳에서 은둔하며 지낼 수 밖에 없는 처지다. 결국, 숨을 쉴 때마다 우리는 늙어 가지만, 숨을 쉬지 않으면 죽게 되는 아이러니를 받아 들일 수 밖에 없는 처지인 것이다.

나의 정리는 이 정도에서 마무리 하려고 한다. 지질학에서 부터 생물학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분야를 산소라는 주제로 자연스럽게 이어 나가는 저자의 능력은 정말 감탄스럽다. 그 만큼 이 책을 이해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보람은 있다.

정리는 이 정도로 마쳤지만, 새롭게 알게된 단편적 지식들을 몇 가지 열거하자면, 우선 퀴리 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하고 싶다. 퀴리 부인은 원래 폴란드 사람이었다고 한다. 예전에 폴란드 관련 전시회에서 코페르니쿠스가 폴란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만큼이나 신선했다. 원래의 이름은 마리아 살로메 스쿼도프스카Maria Salomee Sktodowska였고 파리로 건너가 공부를 하다가 피에르 퀴리라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여 마리 퀴리Marie Curie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녀를 퀴리 부인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퀴리 부인이 노벨상 수상자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딸인 이렌느 또한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미토콘드리아는 모계 유전이라는 사실 또한 처음 알게 되었다. 정자 하나하나에도 수십개의 미토콘드리아가 들어 있고, 난자에도 미토콘드리아가 있지만, 수정이 되어 착상이 되면 정자에 있는 미토콘드리아들은 곧 죽어 버리고, 난자에 있는 미토콘드리아만이 남아서 세포 분열을 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노산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노화의 핵심은 미토콘드리아이고, 나이가 든 여성일 수록 비정상적인 미토콘드리아를 가진 난자를 만들 가능성이 크다. 반면 남자들은 이에 대해 자유롭다. 어차피 정자에 들어 있는 늙은 미토콘드리아들은 난자를 만나서 수정체가 되기까지만 사용되고 폐기될 것이기 때문이다. 복제양 돌리가 일찍 죽은 이유도 이미 6세가 된 나이든 양의 체세포를 통해서 복제되었기 때문인데, 즉, 이미 늙은 미토콘드리아들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니, 사실상 태어나자 마자 생체나이는 6살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