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종말』 제러미 리프킨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의 저서는 약 8년전에 『유럽피언 드림』라는 책을 읽어본 적이 있는데, 그 이후에 읽게 된 저서는 『노동의 종말』이다. 여러 번의 개정판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노동의 종말』은 1999년에 초판이 발간되었기에, 『유럽피언 드림』보다도 10년전에 나온 책이다. 거의 20년 전에 발간된 책을 (소설도 아닌데) 읽게 된 이유는 우선 작년 여름에 감명깊게 읽었던 『만물의 공식』이라는 책의 레퍼런스에 포함되어 있었고, 특히나 최근에 A.I.가 몰고온 일자리 감소 추세가 생각나, 과연 과거에는 이런 문제를 어떻게 받아 들였을 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노동의 종말"이라는 말은 유토피아적이기도 하고 디스토피아적이기도 하다. "일할 필요가 없다"라는 의미와 함께 "일자리가 없다"라는 의미도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제러미 리프킨은 이 두 가지 측면을 모두 언급하고 있다. 물론, 1999년에 기술된 내용이므로 A.I.라는 용어가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으며, 단지 자동화라는 단어로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현상을 언급한다.

흔히들 여러 번의 산업혁명이 일어났다라는 언급을 최근에도 들을 수 있는데, 책이 씌여진 시기로 보면 제러미 리프킨이 다른이들보다 먼저 이러한 분류를 하지 않았나 싶다. 첫번째 산업혁명은 증기기관에 의해서, 그리고 두번째는 전기의 발견, 세번째는 컴퓨터와 소프트웨어, 그리고 인터넷 등을 들 수 있고, 이 책에서는 언급되지 않지만, 현재는 A.I.와 로봇에 의해 급격하게 네번째 산업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두려움은 1차 산업혁명때도 있었다. 러다이트 운동같은 과격한 형태로 그 두려움이 표현되기도 하지 않았는가! 하지만, 대체로 이러한 변화는 사라진 직업만큼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곤 했다. 현재 이뤄지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의 문제는 사라진 일자리만큼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지 않으면서, 인류가 점점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존재론적 고뇌가 핵심이다.

당시, 그러니까 미국의 클링턴 정부 시절에도 직업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 재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등의 노력을 하기도 했으나, 역시, 배움의 속도는 어렷을 때가 빠르지, 고등교육을 받지 않던 블루칼라 노동자를 화이트칼라 노동자로 변모시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고, 역시 실패하고 말았다라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또한, 농업 분야에서도 기계의 발달로 한 농부가 먹여 살리는 인구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해 왔다는 점을 통해서, 농부라는 직업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내용이 있는데, 사실, 농업 생산성은 문명이 발달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점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앞으로도 계속 발전시켜야 하는 현상이기도 하다. 식량생산은 소수에게 맡기고 나머지 사람들은 다른 일을 해야 문명이 탄생/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이 노동의 종말로 인한 미래를 유토피아적으로도 다루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디스토피아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제러미 리프킨은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은 불만이 쌓일 수 밖에 없고, 이러한 불만이 범죄나 폭력으로 변질될 수 밖에 없으며, 안타깝게도 정부는 가장 손쉬운 방법인 경찰력 증강과 감옥 증설로 대응하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문제를 제3부문이라는 상당히 애매모호한 집단이 형성되어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제레미 리프킨의 설명에 의하면, 제3부문이란 독립적 또는 자원적 부문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으며, 다시 말하면 공동체 연대가 금전적 장치를 대체하고 자신의 시간을 남에게 주는 서비스 등을 의미한다. 일종의 품앗이 같은 개념이나 더 나아가서 코뮨같은 것을 의미하는 듯한데, 난 이러한 공동체에 대해서 그다지 획기적인 발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게다가,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런 건 그냥 "지하경제"라고 일축할 수 있다. 다만, 거의 20년전의 아이디어이니 굳이 비판하고 싶지는 않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