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성탈출: 종의 전쟁

원숭이가 인간을 지배한다는 기발한 소재는 시대가 변해도 관객들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 듯하다. 정말 많은 버전의 혹성탈출 시리즈가 탄생했던 것이 그 증거이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혹성탈출 시리즈의 3부작 중 마지막편에 해당하는 혹성탈출: 종의 전쟁이 이렇게 개봉하였다. 앞으로 또 누군가가 혹성탈출이라는 소재를 바탕으로 다시 시리즈를 제작할 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세대가 다시 극장의 메이저 관객이 되는 시대가 온다면 그들에게는 신선하고 올드 팬에게는 향수를 불러오는 이 혹성탈출 시리즈가 다시 사용될 것같다.

이번 혹성탈출 시리즈는 2011년 "진화의 시작"을 시작으로 3년의 텀을 두고, 2014년에 "반격의 서막", 그리고 금년 2017년에 마지막편인 "종의 전쟁"이 개봉되었다. 아마도 그 전에는 팀 버튼 감독이 2001년에 이 시리즈로 영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최근 혹성탈출이 기존 혹성탈출 시리즈와 차별화를 두고 있는 것은 어떻게 지구라는 행성의 주도권을 유인원들이 잡게 되었느냐일 것이다. 기존 시리즈에서는 그것에 대한 확실한 과정을 알려 주지 않고, 알고 보니 새로운 곳이 아니라 뉴욕이었다는 반전으로 관객들을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혹성탈출의 경우는 그런 반전의 요소를 사용할 수 없어서 인지, 아예 그 과정을 상세히 설명해 준다.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진 인간에게만 해로운 바이러스가 퍼져서 대부분의 인간이 멸종하고, 대신 그 바이러스가 유인원들에게는 지능을 향상시키는 작용을 하게 된다는 설정이 사용되었다. 게다가, 그 본거지도 뉴욕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이다. 첫번째 편인 "진화의 시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두번째 편인 "반격의 서막"은 인텔리 유인원들과 멸종을 가까스로 피하고 살아 남은 인간들의 대결을 중점적으로 다룬다. 이 두 진영은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지만, 좀 더 공격적이고 반인간적인 코바가 일을 저질러 버림으로써, 평화는 깨지고, 친인간적이며 평화주의자였던 시저는 평화가 지속될 수 없음을 깨닫고 인간에 대한 방비와 인간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게 된다.

그리고, 이번에 개봉한 마지막편인 "종의 전쟁"에서는 조금 느닷없이 인간들과 유인원들의 공존이 불가능한 새로운 이유가 등장하게 된다. 이미 코바는 죽었고, 따라서, 이제 평화주의자인 시저가 권력을 공고히 하고 있는 상황이라 더 이상의 전쟁은 없을 줄 알았건만, 인간들에게는 유인원을 제거해야할 불가피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전쟁에는 명분이 필요하고, 시리즈를 이어 나가기 위해서는 전쟁이 필요하니, 그런 명분을 갑자기 만들어 버린 것이다.

난 이 혹성탈출 시리즈가 처음에는 그냥 한편으로 끝났을 이야기인데, 인기를 끌자 3부작으로 만들기로 작정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들었다. 첫번째 편의 감독이 루퍼트 와이어트Rupert Wyatt인데, 2편과 3편의 감독은 맷 리브스Matt Reeves이기 때문이다. 특히나, 3편에서 사용된 전쟁의 명분은 너무나 느닷없고, 2편에서 복선같은 것을 깔아 놓지도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번 "종의 전쟁"에만 초점을 맞춘다고 해도 그리 재미있었던 소재는 아니었다. 인텔리 유인원들은 여전히 살아 남은 인간들보다 여러 모로 열등하다. 당연히 인간이 만든 무기이니 무기를 다루는 능력도 열위에 있고, 포로 관리 등도 마찬가지다. 그저 힘이 훨씬 세다는 것 말고는 분명 인간이 여전히 우월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들이 혼란한 틈을 타서, 인간들의 손아귀로부터 벗어나 그들만의 유토피아를 찾아 탈출한다는 것이 제 3편의 내용이다. 역시나 평화주의자 시저가 이끄는 이야기는 호전적인 코바가 이끄는 2편의 이야기에 비하여 지나치게 담백하다. 이렇게 담백하면 혹여 비평가들에겐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지언정, 관객들에게 좋은 점수를 받기는 어려울 것이고, 극장에서 빨리 내려올 수 밖에 없다.

기존의 혹성탈출은 유인원들이 압도적인 우세를 보임으로 인하여, 그들에게 수난을 겪는 인간들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던 반면, 이번 3부작은 시저가 이끄는 유인원들에게 감정이입이 된다. 이것이 시저를 연기한 앤디 서키스Andy Serkis의 명연기 덕분인지, 아니면 여전히 우위를 점하고 있는 인간에 비해서 열세에 있는 유인원들을 향한 동정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으로서 인간과 싸우는 유인원이란 이종에게 마음이 가는 것이 참 묘하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