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깨버섯탕 @버섯집

성수동이 워낙 힙하다보니 맛집들을 찾으면 찾을 수록 더 많이 나타나는 것같다. 이번엔 심이누나와 버섯집이라는 곳을 다녀왔다. 그런데, 성수동 맛집을 방문하다보면 종종 기분나쁜 일을 겪게 된다. 이번에도 그러했다. 발단은 내가 너무 빨리 도착했던 것부터다.

원래 심이누나와 5시 30분에 만나기로 했으나, 버섯집이 저녁식사를 시작하는 시각이 6시인 것을 알고 5시 45분으로 15분을 늦추었다. 그럼에도 난 40분쯤 도착하여 조금 기다리다가 6시에 시작하지만 안에서 기다리는 것은 괜찮겠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안에서 서버들이 빈자리에 앉아서 쉬는 것을 목격하고는 문을 열고 들어가 안에서 기다릴 수 있냐고 물어 보았다. 그러나 6시부터 시작이니 밖에서 기다려 달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단호한 거부에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뭔가 그들의 휴식시간을 내가 방해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실제로 그러했기에 난 알겠다고 하며 나와서 그 주변을 산책하면서 다른 맛집이 있나 구경을 하고 있었다. 얼마 안있어 심이누나가 도착했고, 나는 다시 버섯집 앞으로 돌아와 줄을 서고 있었다. 사실, 줄선 사람은 우리 둘 뿐이라 좀 뻘줌하기도 했고, 그 후에 몇몇은 나와 같은 거부의사를 듣고는 그냥 다른 밥집으로 향하곤 했다.

그런데, 55분쯤에 어느 일행이 문을 열고 들어 가더니 그냥 자리에 앉아 버리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다시 나오지 않는다. 버섯집은 얼마 넓지 않은 공간의 전면을 통유리로 만들어 놔서 그런 광경들을 앞에서 다 확인할 수 있다. 우리 둘은 화가 났다. 나보다 심이누나가 더 화가 난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도 들어 가야 하나, 아니면, 그냥 돌아가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이왕 온 거, 그냥 들어가기로 했다.

그냥 들어 가기로 했던 것은 그들의 행동이 악의적이지는 않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휴식시간을 엄격히 지키고 싶어 했고, 그래서 45분쯤 들어온 나를 포함한 다른 손님들에게는 그런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개시 5분전에 들어와 테이블에 착석해버린 손님보고 다시 나왔다가 들어오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만, 그들은 55분에 들어온 손님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은 대신, 45분부터 기다렸던 우리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다는 사실까지 인지하지는 못했다. 만약, 그랬다면, 통유리 저편에서 45분부터 기다려 왔던 우리에게 약간의 유감을 표명하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적어도 우리 주문부터 받아야 했다. 난 이런 손님 응대에서의 허점이 성수동의 한계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워낙에 급작스럽게 인기지역이 되다 보니 이런 세세한 점을 놓쳐도 테이블을 쉽게 채울 수 있고, 회전율도 빠르다.

나빠진 기분을 삭히면서 우리는 주문을 했다. 이미 몇 차례 방문을 했던 심이누나가 들깨버섯탕이 괜찮았다는 이야기를 하였기에 우리 둘은 그것을 주문했다. 모험을 해볼까 하다가, 이미 한차례 기분 나쁜 일이 있었는데, 메뉴까지 잘못 선택하면 이번 모임이 안좋은 추억으로 기억될 것같아 안전한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우여곡절끝에 주문한 버섯들깨탕은 다행스럽게도 입에 맞았다. 난 들깨수제비나 들깨칼국수 등이 유행하기 시작했음에도 늘 시원한 해물맛이 나는 국물을 차마 포기하지 못했기에 들깨 베이스의 국물을 먹어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 먹어본 들깨버섯탕은 꽤 훌륭한 맛이었다. 참 고소하다. 심이누나는 다소 짜다고 했지만, 내 입맛에는 간도 잘 맞았다.

입에 맞는 음식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버섯집을 다시 방문하게 될 지는 잘 모르겠다. 기분 나쁜 것은 기분 나쁜 것이니까.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