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가즈오 이시구로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접한 직후, 평소 애용하던 노원구 도서관 사이트에 접속하여 그의 작품들을 검색했더니, 몇 가지가 보인다. 이미 『나를 보내지 마』는 읽었기 때문에 『남아 있는 나날』과 『파묻힌 거인』을 확보해 놓았다. 먼저 『남아 있는 나날』을 읽기로 해서 이제서야 다 읽게 되었다.

어떤 작품이 노벨문학상 수상에 가장 영향을 미쳤는 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남아 있는 나날』이 내 취향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만약 『남아 있는 나날』이 수상에 가장 큰 여향을 미쳤다면 앞으로는 노벨문학상 수상작에 집착하지 않을 예정이다. 북유럽 노인들의 취향과 내 취향은 다른 것일 테니...

나치즘과 관련된 이야기나 전쟁 이야기 등이 등장인물들의 대화에 등장하는 것으로 비추어 보아 시대적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이 전후가 아닐까 추측된다. 주류 내용과 전쟁은 크게 상관이 없긴 하지만, 대충 그 정도 시기의 영국 시골구석이라고 보면 된다.

그 시절의 영국은 아마도 가까스로 귀족사회가 유지되고 있던 상황이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남아 있는 나날』은 그 당시 집사였던 스티븐슨이라는 캐릭터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백하고 차분하게 써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고양이 키우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귀족의 대저택에서 시중을 드는 그 집사다. 아마도 TV 시리즈 중에서 다운튼 애비Downton Abbey 같은 느낌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내가 그 드라마를 안본 관계로 확신은 못하겠다. 같은 이름의 영화도 나와 있다. 안소니 홉킨스Anthony Hopkins가 스티븐슨씨 역할을 맡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야기가 정말 무미건조하다. 뭔가 흥미진진하고 급박하게 전개되는 소설들을 위주로 읽다가 이런 잔잔한 이야기를 읽으려니 책장이 참 안넘어간다. 살인사건도 없고 딱히 사건이 없으니 범인도 없다. 그냥 집사였던 노인이 집사시절에 연애는 못하고 썸만 타다 끝난 다른 여인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훌륭한 집사가 되기 위해서는 사내 연애를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뭔가 고리타분한 사람의 시선에서 이야기가 진행되니 이야기도 상당히 고리타분하다.

흔히 클래식이라고 불리우는 소설들은 대부분 왜 이렇게 지루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 시절의 사람들은 이렇게 느린 템포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일까, 아니면 클래식이라 불리우려면 이야기의 템포가 빠르면 안되는 것일까? 한 권 더 확보해 놓은 이시구로의 책도 있는데 벌써부터 재미 없을까봐 기대감이 떨어진 상태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