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력

부산행을 제작한 안상호 감독은 헐리우드에서 주로 사용되는 소재를 한국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일가견이 있는 듯하다. 부산행에서 좀비라는 소재를 한국형 좀비이야기로 재탄생시켰듯이 이번에는 헐리우드에서 종종 활용되는 염력이라는 능력을 가지고 한국식으로 영화화했다. 영화 이름도 그냥 과감하게 염력이다.

부산행이 흥행에 성공했음에도 난 부산행에 대해서 그리 호의적인 평을 하지는 않았는데, 이미 너무나 많은 좀비물을 본 상태라 단지 좀비들이 한국인이었다는 사실 이외에는 딱히 흥미로운 점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헐리우드 영화보다는 국내 영화에 좀 더 호흡하는 국내 영화관객들, 정확히 말하면 좀비물에 노출이 덜 된 관객들과는 좀비물에 대한 피로감의 차이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비과학적인 요소를 영화의 소재로 삼는 이야기에 꽤나 흥미가 있는 관객으로서, 염력을 안보고 지나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오면서 SF물을 이렇게 풀어 나갈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SF물에는 약간의 코메디를 가미시켜 관객들이 비자연적인 현상에 피로감을 덜어낼 수 있는 장치가 있게 마련인데, 종종 코메디물에 SF의 소재가 가미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되는 SF장르의 영화가 있다. 염력은 아마도 그런 류의 영화일 것이다.

염력을 보면서 느낄 수 있는 확실한 점은 하늘을 날아다닌다고 다 멋진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왜 SF장르에서 날아다니는 히어로들에게 쫄쫄이 바지를 입히는 지 염력을 보면 와닿을 것이다. 헐렁한 바지와 대충 고른 듯한 잠바떼기를 입고 하늘을 날고 자유낙하하는 헤로인을 살리는 것은 참으로 우수깡스럽지 않을 수 없다.

염력이라는 영화가 얼마나 흥행을 할 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안상호 감독이 다음에 만들 영화의 원동력이 될 정도의 흥행은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난 안상호 감독이 다음에는 어떤 소재를 한국식으로 해석해서 내놓을 지 기대가 된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