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로랑생전 @한가람미술관

꽤 오래전에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에서 전시되고 있던 마리 로랑생전을 전시기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에서야 방문하게 되었다. 회사가 선릉역 근처이다 보니 심리적인 요인으로 인해 주말에는 강남쪽으로는 잘 안내려오게 되고, 그러다보니 예술의전당에도 잘 안들리는 것같다. 그렇다고, 퇴근 후에 방문을 하기에는 시간이 빠듯하다. 그런데, 주말에 강남역에서 점심약속이 생겨서, 점심 후에 예술의전당을 방문하게 스케줄이 맞은 것이다. 전시회의 만족도를 감안해, 놓치면 아까울 전시회였다.

주말임을 감안해도 꽤나 많은 인파가 전시회를 관람하고 있었는데, 내가 갔을 때가 피크타임인지는 모르겠지만, 15분정도 대기를 하다가 들어가야 했다. 마리 로랑생이라는 작가가 국내에서 그렇게 인지도가 있는 작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표를 엄청나게 저렴하게 뿌린 것도 아님에도 이렇게 인기가 있다는 것은 국내 관람객들의 정서와 작품의 스타일이 잘 맞았다는 뜻일게다.

예상외의 대기시간을 끝내고 전시회장으로 들어서면서, 초반에는 그다지 좋은 인상을 받지는 못했으나, 전시회 중반부에 이르러서는 심미성이라는 측면 하나만으로도 마리 로랑생의 작품은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전문가들의 평가가 어떨 지는 모르겠지만, 아마추어인 나에게는 정말 마음에 드는 작품들이 수두룩했다.

마리 로랑생의 화풍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다소간의 큐비즘이 가미된 느낌이 있고, 긴 얼굴이나 목 등을 보면 모딜리아니의 작품들이 연상되기도 한다. 또한, 전반적으로 곡선을 이용하는 것은 아르누보 양식의 영향을 받았다. 이렇게 다양한 화풍이 드러나는 것은 자신만의 개성이 결여되었다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다양한 화풍을 열린 마음으로 자신의 작품 속에 녹여 놓았다라는 평가를 내릴 수도 있을 것이다.

여러 가지 화풍을 우선 접어 놓고, 마리 로랑생의 작품들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점은 바로 파스텔톤의 색감이었다. 특히나, 채도를 낮춘 그레이톤으로 배경을 잡고, 포인트로 역시 채도가 매우 낮은 베이비핑크를 사용한 것이 정말 잘 어울렸다. 난 핑크라는 색이 이렇게 다른 색과 어울리는 것을 본 적도 없고, 이렇게 적절하게 사용된 것을 본 적도 없는 지라, 그녀의 작품을 보면서 뭔가 미술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마냥 황홀해 했다.

오디오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마리 로랑생은 (전쟁 때문에 고생을 하긴 했지만) 나름 생전에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아 풍족한 생활을 누려보고 생을 마감한 것으로 나온다. 대체적으로 천재적이고 생후에도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는 작가들을 보면, 생전에는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마도 그 차이는 작가의 천재성을 당대의 관객들이나 전문가들이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마리 로랑생의 인지도가 그렇게 높지 않은 것이 작품의 혁신성이라는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한 것이 아닐까라는 추측을 해본다. 하지만, 그런 것과 상관없이, 그녀의 작품들은 나중에 돈을 많이 벌면 거실에 걸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 만큼 매력적이었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