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7.26

인랑

인랑은 강동원, 정우성, 한효주로 이어지는 화려한 캐스팅 때문에 봐야겠다고 진작부터 찜해둔 영화였지만, 막상 예매를 해놓고 보니 워낙에 평이 안좋아 예매 취소를 할까도 생각했다가, 김지운 감독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는 의심없이 극장으로 향했고, 개인적으로는 그럭저럭 만족스러웠다.

시대적 배경이 2029년이다. 그래서인지 SF장르를 표방하고 있는데, 막상 영화가 시작되면 딱히 미래의 느낌이 나지 않고 그저 디스토피아적인 어두운 느낌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2029년이 그리 먼 미래가 아니네. 10년밖에 안남았다. 세월이 언제 이렇게... 그리고, 통일을 앞둔 상황에서 통일에 찬성하는 정부조직과 반대하는 정부조직, 그리고 반정부 테러단체가 서로 자기 목소리를 내면서 갈등이 폭발한다.

인랑을 본 관객들의 평들 중 대부분은 악평인데, 그 이유는 스토리가 산으로 가는 듯하다거나 로맨스가 뜬금없다거나 하는 등의 스토리의 부재를 지적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김지운 감독의 영화라는 것을 알고난 이후에는 악평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원래 스토리를 촘촘하게 만드는 감독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마, 영화를 보면서 '이게 말이 돼?', '왜 굳이 그렇게?', '왜 갑자기?', '그냥 이렇게 하면 되는거 아냐?' 등의 의구심이 든다면, 매우 정상적인 관객이다.

특별히 김지운 감독의 영화를 챙겨보는 것은 아닌데, 영화를 보고 나서 나중에 찾아 보니 김지운 감독의 영화였던 경우가 많았다. 인랑 전에 내가 본 김지운 감독의 영화는 총 다섯편인데, 가장 먼저 본 것이 장화, 홍련, 그 다음으로는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밀정, 악마를 보았다이다.

이중에서 달콤한 인생을 재미있게 봤다면 아마도 이번 인랑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다. 김지운 감독 영화의 특징은 대체적으로 화려한 미장센과 과격한 총격씬 정도를 꼽을 수 있고, 그러한 성향을 가장 잘 표현한 것이 달콤한 인생이다. 이번 인랑에서도 돋보이는 미장센과 함께 화려한 총격씬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다른 관객들이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로맨스는 참 뜬금없다. 마치 이런 로맨스에 러닝타임을 쓰고 싶지 않은 듯, 서로 친밀해지는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해 버린다. 한효주같이 이쁜 여자와 강동원같이 멋진 남자가 만났으면 어떤 계기에서건 서로 불꽃이 튀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굳이 설명이 필요한가라고 말하는 듯, 그냥 서로를 바라보는 듯한 시선으로 그들을 클로즈업하며 자세한 설명을 생략해 버린다. 그리고, 이렇게 절약한 러닝타임을 총격씬으로 사용해 버린다. 로맨스 할 시간에 총알 하나라도 더 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런 스토리의 과감한 생략은 스토리가 띄엄띄엄하다는 지적을 받을 수 밖에 없는데, 장화, 홍련을 볼 때만해도 이러한 과감한 생략이 관객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남겨 주기 위한 작가주의적인 기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그 이후에 개봉한 영화들을 보면서 그냥 이 감독은 스토리 촘촘하게 만드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에도 김지운 감독은 여배우를 정말 예쁘게 찍어주는 걸로 유명하다. 장화, 홍련에서 임수정, 문근영이 그러했고, 달콤한 인생에서 신민아 또한 정말 예쁘게 나왔다. 그리고, 이번에 한효주도 정말 예쁘게 나온다. 이제까지 본 한효주 중에서 가장 예쁜 것같다. 아주 천천히 극도로 클로즈업한 상태에서 상대 배우의 시선을 고려하여 찍기 때문인 듯한데, 그래서 한 때 여성단체에서는 김지운 감독의 영화에 극렬한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여배우 뿐만 아니라 이번 인랑에서는 강동원과 정우성이라는 인물로는 결코 빠지지 않는 남자 배우들 또한 이렇게 롱테이크로 관객들에게 충분히 감상할 시간을 제공한다. 예쁘게 찍히는 배우들을 오랫동안 천천히 주름 하나하나까지 감상할 시간을 준다는 측면만 고려해도 난 이 영화가 본전생각나는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화려한 미장센과 총격씬은 여전히 볼만하다.

아마도, 이번 인랑은 관객 평점도 저조하고 전문가들의 평 또한 저조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난 김지운 감독의 영화이니 그냥 그러려니 하고 장점을 즐길 수 있었다. 모든 영화가 꼭 탄탄한 스토리로 무장할 필요는 없다.

by 이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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