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성

추석연휴를 공략하기 위한 극장가의 한국영화 대전, 지난 토요일에 명당을 보고 왔는데, 이번에는 안시성이다. 명당을 먼저 본 이유는 주연배우의 영향력을 감안하였는데, 아무래도 조승우가 조인성보다는 연기력 측면에서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헐리우드 영화의 경우는 내가 배우들의 연기력을 판단할 만큼 영어 실력이 우수한 편이 아니기에 CG나 스케일이 더 영향을 주는데 반해, 한국영화 같은 경우는 배우의 연기력이 수준 이하이면 몰입이 잘 안된다.

명당을 먼저 본 것은 위와 같은 이유때문이었지만, 다른 이유때문에 명당을 먼저 본 것이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다. 안시성의 스케일이 명당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안시성을 본 이후에 명당을 보았다면 아마도 명당이 시시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만큼 안시성의 전쟁씬은 엄청난 인원이 동원된 중국의 전쟁영화에 버금갈 정도로 훌륭했다. 이것이 역사적 고증이나 현실성같은 것을 따지고 들면 어떤 결과가 나올 지는 잘 모르겠지만, 난 밀덕도 아니고 역덕도 아닌지라 그저 멋져 보인다. 이세민의 당나라 군사들이 여러 위협적인 전술을 들고 오는 것을 나름 머리를 써서 방어하는 것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미 언근했듯이 내가 밀덕이 아닌지라 그런 전술을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상당히 마음 졸이며 보았다.

조인성의 사극 연기는 대체적으로 함량미달이라는 평가를 내릴 만 했는데, 21세기에 살다가 뭔가가 잘못되어 갑자기 몇 천년 전에 떨어진 환타지 드라마의 주인공인 것 같았다. 자고 일어나면 다시 21세기의 서울에 있을 것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럼에도 그의 훤칠한 키 덕분에 다른 장수들은 휴먼이고 혼자 엘프같은 분위기다.

또한 양만춘의 여동생으로 나오는 백하라는 캐릭터를 설현이 연기했는데, 처음에는 뭔가 낯이 익은 배우라고 생각하고 못알아 보다가 나중에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보고서야 설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워낙 사람을 못알아 보는지라... 나름 막중한 역할을 맡고 있음에도 감정적이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캐릭터로 설정된 점은 좀 아쉽다.

결론적으로, 안시성은 배우들의 기대에 못미치는 연기력을 커버하고도 남을 정도로 멋진 전쟁씬 때문에 높이 평가될 영화이다. 한국영화의 CG 기술이 이 정도로 발전했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앞으로도 상향평준화된 CG기술로 인하여 멋진 사극이 자주 등장하게 되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