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셔널지오그래픽 포토아크 @경향아트힐

내셔널지오그래픽 전시회라고 하여 동물 사진 구경이나 하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경향아트힐을 찾았다. 오랜만에 방문한 덕수궁 돌담길은 여전히 시민들에게 사랑받고 있었고, 그 사이를 지나쳐 조금 더 걸어가 경향아트힐에 다다랐다. 처음 가보는 전시회장인데, 건물은 금방 찾았지만 건물 안에서 두리번 거려야 했다.

들어올 때는 가벼운 마음이었지만, 나갈 때는 마음이 무거울 수 밖에 없었다. 바로 멸종될 위기이거나 사실상 멸종된 상태인 동물들을 주제로한 사진이었기 때문이다. 지구상의 어떤 생명체이든 멸종될 가능성은 있다. 과거에도 수많은 동식물들이 지구 생태계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멸종의 운명을 맞이하지 않았나! 호모 사피엔스도 당연히 멸종될 수 있다. 그것이 지구 외부로부터의 원인이든, 지구의 환경변화이든, 또는 호모 사피엔스 스스로의 자멸이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그런 객관적 관점으로 보면 포토아크에 담긴 동물들 또한 그저 그들의 운명을 다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하지만,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감정은 그리 간단치 않다. 이제 다시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역시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특히나 그 멸종될 생명체가 귀엽거나 순하거나 한 경우 더욱더 안타까움이 배가된다. 징그러운 짐승보다 귀여운 짐승에 더 정이 가는 것은 인간의 편협함이지만 그것을 당당하게 탓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난 기후변화에 인류가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쳤는지 환경론자들만큼 확실한 신념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반면, 인류의 영향력이 지대했다 하더라도 그것을 인류 스스로 되돌릴 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묻는다면 그것은 확실하게 아니라고 대답할 수 있다. 되돌리기엔 이미 너무 많이 와버렸다. 그래서, #SaveTogether 라는 해쉬태그가 참 공허하게 느껴진다.

인류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인류에 의해 지구의 환경이 변화했다는 것도 그저 많은 현상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금치산자에게 잘못을 탓하지 않듯, 인간도 비난을 받을만큼 충분히 위대한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지금의 환경변화가 인류의 번영에 치명적일 지는 모르겠으나, 지구는 다시 회복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에게 보금자리가 되어줄 것이다.

전시회를 본 후, 저녁식사를 마치고 인근 스타벅스에 들러 시원한 음료를 주문했더니, 종이 빨대가 제공되더라. 언제부터인가 빨대를 보면 바다거북의 콧구멍에 꽂혀 있던 빨대가 생각나곤 한다. 그래서, 종이 빨대 처음 사용해본 것이 꽤나 뿌듯하다. 마치 세상 바다거북을 다 살린 기분이 든다. 아마 환경론자들은 이런 기분에 취해 열심히 활동하는 것일게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