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성의 원리』 최낙언

이번 『물성의 원리』을 읽기 전에 이미 저자인 최낙언님의 저서는 두 권을 읽은 상태였다. 하나는 『Flavor, 맛이란 무엇인가』 이고, 다른 하나는 『진짜 식품첨가물 이야기』이다. 이 두 권 모두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듯한 시원함을 느꼈고, 그 이후로 최낙언님의 Facebook 페이지를 following 하며 식품에 대한 지식을 늘려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 분은 상당히 전투적으로 인터넷이나 TV에 등장하여 사실을 오도하곤 하는 사이비 건강전도사들을 비판하곤 하는데, 가끔은 반어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지식이 일천한 나는 이렇게 반어법으로 비판을 하면 정말 맞짱구를 쳐주는 것인지 반어법으로 비판을 하는 것인지 햇갈릴 때가 있다. 『물성의 원리』 도입부에 원리를 알면 다른 책들보다 쉬울 것이라고 씌여 있는데, 아마도 이것이 반어법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읽은 같은 저자의 책 보다 이번 『물성의 원리』가 가장 어려웠기 때문이다. 화학식이 등장하고 오랫동안 뇌 어딘가에 봉인되어 있던 학창 시절의 교양 지식을 끄집어 내야 했다.

책의 분량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다. 300여쪽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300여쪽에 들어 있는 지식의 양이 엄청나다. 문장이 장황하지 않고 딱 할 이야기만 하는 듯해서 살짝 무미건조하기도 하지만, 매우 효율적으로 지식을 전달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일반적으로 나의 책 리뷰는 나중에 내가 다시 해당 서적을 읽지 않아도 그 책의 내용이 생각날 수 있도록 중요한 대목을 중심으로 요약해 놓는 경우가 많은데, 『물성의 원리』는 책 자체가 엄청나게 압축적으로 지식을 품고 있어, 평소의 방식대로 리뷰를 해놓으려면 책 전체를 다시 타이핑해야 할 정도이다.

전반부는 대체적으로 분자단위, 때로는 원자단위로 분석하여 어떤 음식이 왜 이러한 물성을 띠게 되는 지에 대해 설명하며, 이러한 설명은 후반부에서도 이어진다. 그리고, 중반부에서는 필수 영양소라 할 수 있는 지방, 탄수화물, 단백질로 섹션을 나누어 설명을 한다.

전반부에서 깨달은 가장 큰 핵심내용은 바로 세포간 크기 차이가 엄청나다는 점일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 몸을 구성하는 진핵세포와 핵이 없는 원핵세포와는 몇 천배의 차이가 있다. 물론, 어차피 매우매우 작은 크기이겠지만, 마이크로의 세계가 동작하는 원리를 이해하려면 이 상대적인 크기를 인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중반부 부터는 영양소 별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간다. 내가 지방에 대해서 인터넷을 뒤지며 검색을 했던 시기는 바로 뉴욕시에서 트랜스지방을 규제한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은 직후 였을 것이다. 당시 국내 언론들도 이 사실을 앞다투어 보도하며 국내에서도 이슈가 되곤 했다. 당시에 기억하고 있던 지식은 대체적으로 식물성 기름은 불포화지방산이고 액체로 되어 있고, 동물성 기름은 포화지방산이며 고체로 되어 있는데, 액체로된 식물성 기름을 고체로 만들면 트랜스지방이 생긴다 정도였을 것이다. 『물성의 원리』에서도 이러한 내용이 나온다. 하지만,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지방이 길게 연결되면 폴리에틸렌이 된다는 점이었다. 생각해보면 플라스틱은 유기물의 시체로 만들어진 석유에서 나온 것이니 어쩌면 그렇게 놀라울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삼겹살과 폴리에틸렌이 연결 구조만 다르다고 하니 띵! 뭔가 삼겹살을 꾸꾹 누르면 플라스틱이 만들어지는 것이 상상되어 피식했다.

탄수화물은 요즘 다이어트 때문에 가장 관심이 가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탄수화물이나 설탕 등 다당류이든 단당류이든 동물은 글리코겐 형태로 간이나 근육에 탄수화물을 보관하고, 그 허용량이 다 차면 지방으로 치환시켜 피하지방이나 내장지방으로 저장한다는 정도까지는 알고 있었다. 이번에 『물성의 원리』를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그 저장하는 양이 얼마나 되느냐였는데, 성인의 경우 체내에 300~350g 정도의 탄수화물이 저장되어 있고, 그 중 100g 정도는 간에, 200~250g 정도는 심장, 연조직 및 근육 골격에 저장되어 있다고 한다.

이것은 동물의 입장이고, 식물의 입장에서 보면 탄수화물은 뼈대를 이루는 물질로, 이 역시 지방 파트에서 만큼이나 놀라웠는데, 포도당이 사다리꼴 모양으로 빽빽하게 연결된 것을 셀룰로스라고 하고, 이것으로 나무같은 딱딱한 조직이 만들어질 수 있다고 한다. 뭔가 달달할 것 같은 포도당이 이렇게 딱딱한 조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참 충격적이지 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책에는 나오지 않지만 염소가 종이를 소화시킬 수 있는 것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단백질의 차례가 왔다. 식물에게 프레임의 역할을 하는 것이 탄수화물이라면 동물에게는 단백질이 그러한 역할을 한다. 물론 뼈대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고, 근육이나 피부 등 상당 부분에 존재하는 콜라겐에 대한 이야기다. 단백질의 한 종류인 콜라겐이 동물의 프레임을 조성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몸에서 물 다음으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단백질이라고 한다. 무려 16%를 차지하고 있다고. 물론 지방이 16% 이상인 사람도 드물지 않은데, 원래는 2%면 충분한데 많이 쳐먹어서 과잉 생산된 것들이라고 한다. 뜨끔하며 고개를 숙여 볼록 나온 배를 한 번 쓰다듬은 후 다시 독서를 계속 했다.

단백질의 응고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음식의 예를 들어 설명해 주는데, 밀가루에 들어 있는 글쿠텐에 대한 설명이 가장 흥미로웠다. 아쉬웠던 것은 흔히 말하는 필수단백질 같은 개념에 대한 이야기가 없다는 점이었다. 즉, 우리 몸에서 합성할 수 있는 아미노산과 그렇지 않고 꼭 섭취해야만 하는 아미노산에 대한 지식을 얻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물성과는 관계가 없는 내용이라 그런지 빠져 있었다.

그리고, 후반부에는 의외로 물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 책의 커버리지가 이렇게 넓다. 우리 몸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물, 물이 없으면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태어날 때는 80%까지 차지했던 물이 죽기 전에는 50%까지 그 비중이 떨어진다고 한다. 어쩌면 노화는 물을 잃어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는 대목은 꽤나 섬뜩했다. 여자들이 모이스쳐라이징에 목숨거는 행위는 매우 현명한 것이었다.

이 정도로 정리를 해봤는데, 역시나 중요하지만 누락된 내용도 많고, 이 책은 다시 읽어 봐야 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는데, E-Book으로 한 권 구입해서 필요할 때 꺼내 볼 예정이다. 백과사전 같은 책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다 읽는데 고전했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