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어떻게 움직이는가?』 페르 박

복잡계 이론을 선물옵션 트레이딩에 접목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신 달무드님의 블로그를 통해서 복잡계 이론에 대한 책을 추천받곤 한다. 이번에 읽은 『자연은 어떻게 움직이는가?』는 그런 책들 중에 일반 독자들 눈높이에 맞춘 가장 유명한 서적이고, 심지어 달무드님의 블로그 이름이 "자연은 어떻게 움직이는가"이다. 비전공자가 복잡계 이론에 대해서 관심이 있다면 가장 먼저 읽어야할 책으로 추천할만한 책이기도 하다. 책 여기저기서 어려운 복잡계 이론의 개념들을 독자들에게 최대한 쉽게 전달하고자 노력한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아마도 내가 『자연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가장 먼저 읽고 다른 복잡계 이론에 대한 책들을 섭렵해 나갔다면 조금 더 수월하게 지식을 쌓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난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학문 중에 하나인 복잡계 이론에 대해서 상당히 힘들게 이해를 해나가곤 했다. 그러다보니 오히려 『자연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읽을 때는 크게 임팩트를 느끼기 어려웠다. 이미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는 내용을 개념적으로만 간단하게 소개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읽으면서 가장 중요한 내용 두 가지를 꼽으라면 아무래도 자기조직화임계성 정도로 해석될 수 있는 Self-Organized Criticality(이하 SOC), 그리고 단속평형Punctuated Equilibrium이다.

저자인 페르 박Per Bak은 이 책을 통해 SOC를 모래 쌓기라는 예를 통해 설명하였다. 모래를 조금씩 뿌려 모래성을 쌓아가다 보면 점점 높이가 올라가지만 어느 순간에는 견디지 못하고 결국 모래들이 밑으로 흘러 내려간다. 그 견디지 못하는 시점, 그리고 그 시점에 쌓아 올려진 모래 한 알이 핵심이다.

난 조금 더 실생활에서 와닿는 예를 들어 설명하고 싶다.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과정도 이와 비슷하다. 다이어트를 결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를 외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럭저럭 잘 지켜나가다 결국 실패하는 케이스가 더 알맞은 예가 아닐까 한다. 다이어트를 결심하고 나면 사방에서 그 결심을 무너뜨릴 유혹들이 펼쳐진다. TV 광고들은 먹음직스러운 비주얼로 잠재적 고객들을 확보하고자 노력하고, 친구들은 맛집탐방을 가자며 연락한다. 인스타그램에는 #JMT 사진들이 넘쳐 난다. 강력한 정신력으로 이러한 유혹을 버텨보지만 결국 어떤 시점이 되면 어처구니 없이 가벼운 유혹 한 번에도 그 결심이 무너져 내리게 된다. 그 "어떤 시점"이 바로 임계점이고 강력한 정신력이 서서히 한계에 접어드는 성향이 SOC이라고 비유할 수 있다.

단속평형은 SOC의 연장선에서 이해를 하면 된다. 위의 다이어트 예시에서 "어떤 시점" 즉 임계치에 다다르면 무엇이 트리거가 되었든 먹고 나서는 결심이 완전히 무너져 내려 하루에 먹는 양이 급격히 늘어나 버린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저탄고지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하루에 탄수화물을 100kcal 정도만 먹다가 정신력의 임계치에 다다르는 순간 100, 200, 400, 나중에는 하루 모든 식단을 탄수화물로 채워버리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저자는 나와는 다르게 좀 더 품격 있게 진화의 과정 속에서 단속평형 이론을 제시했다. 다윈의 진화론과 차별점을 갖게 되는 것이 바로 단속평형 이론인데, 진화가 매우 점진적으로 일어나긴 하지만, 어느 순간이 되면 기하급수적으로 폭발적인 진화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공룡의 멸종은 이미 진행상태였고, 흔히 이야기되고 있는 운석충돌같은 Deep Impact가 없이도 대멸종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상태였다.

『자연은 어떻게 움직이는가?』을 읽게 되면서 복잡계 이론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얻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기존에 알고 있던 지식을 체계화하는데 도움을 받았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자연은 어떻게 움직이는가?』는 복잡계 이론 입문서로써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고, 나와 같이 굳이 돌아가지 말고 이 책으로 시작하라고 조언해주고 싶다.

난 SOC나 단속평형 이론의 개념을 모르고 시스템트레이딩을 시작했지만, 내가 만들고 있는 시그널의 성향을 보면 단속평형이 이루어지는 그 임계점을 찾기 위한 과정의 결과물인 경우가 많았다. 이것도 어쩌면 SOC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 살짝 오싹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난 이 이론을 체화하는 과정에 있고, 점점 훌륭한 트리거를 찾기 보다는 임계점에 얼마나 가까워져 있는 상태인지를 찾는 쪽에 좀 더 심혈을 기울일 필요가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 인지를 했으니 실행에 옮겨야 할 때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