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포철길 따라 청사포까지 걷기, 그리고...

태윤씨가 미포철길과 달맞이고개를 소개시켜 주기는 했지만 당시에는 딱히 철길을 왜 걸어야 하는지, 폐선된 철길을 걷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 의아했다. 지금도 딱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걷는 여행을 좋아한다면 미포철길이 그럭저럭 괜찮은 곳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때론 평탄하고 때론 울퉁불퉁한 길을 걷다보면 어느덧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하고 내면의 나와 대화를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쪽에 펼쳐진 바닷가의 풍경은 보너스다. 나같은 경우 해운대쪽에서 청사포쪽으로 올라오면서 경치를 구경했는데, 경치를 즐기려면 오히려 청사포에서 해운대쪽으로 내려오는 것이 좀 더 유리하다. 해운대쪽을 바라보는 것이 훨씬 경치가 좋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걷다가 종종 뒤를 돌아 뷰를 구경하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막상 청사포에 근처까지 가서 등대는 슬쩍 보기만 하고 사진을 남기진 않았다. 뭔가 계획없이 여기까지 오느라... 그리고, 달맞이고개길이 따로 있는 것인지 이 미포철길을 달맞이고개길이라고 부르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바누토스트 @카페 일다

청사포 근처에 다다르니 목이 마르고 출출하다. 해운대 구경전에 금수복국에서 밀복지리를 한 그릇 먹었고, 후식으로 스타벅스 해운대점에서 자바칩을 갈아 넣은 바닐라 크림 프라푸치노를 마셨음에도 강렬한 햇볕을 맞으며 걷다 보니 지쳐 버렸다. 그 와중에 현란한 로고가 보이는 카페가 등장을 한다. 카페 일다라고 씌여 있다. 마치 헨젤과 그레텔이 마녀가 만들어 놓은 과자집에 들어가듯 끌려서 들어가 버렸다. 사실 한 번 지나치려고 했는데 다시 돌아와 들어갔다.

내가 고른 메뉴는 바누토스트라는 이름을 아이였는데, 서빙이 되고 나서 왜 바누토스트라고 불리우는 지 알게 되었다. "바"는 바나나 또는 바닐라 아이스크림, 그리고 "누"는 누델라였다. 이 조합이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바닐라와 바나나의 향긋함과 누델라의 달달함, 거부할 수 없는 맛이다. 요즘 자꾸만 튀어 나오고 있는 배를 한 번 쳐다 보고, 오늘은 많이 걸었으니 괜찮을 것이라며 달콤한 생각으로 자신을 속여 본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