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생각해보면 난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 상당히 만족감을 보였던 기억이 많다. 괴물도 그러했고 설국열차도 그러했으며 넷플릭스로 방영된 옥자를 보았을 때도 그러했다. 나중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인상깊게 보았던 살인의 추억도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었다. 그래서, 기생충이 봉준호 감독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에 망설임없이 극장을 찾았다. 일반적으로 상받은 영화, 특히 칸느에서 상을 받은 영화와는 별로 친하지 않음에도 감독을 믿었고 그 믿음에 대한 보상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를 일반적인 장르로 분류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데, 그래서 봉준호 자체가 장르라고까지 말하는 이도 있다. 그냥 스타일리쉬하다고 표현하기도 어려운 것이 특정 스타일에 집착하는 것도 아니고, 참... 뭔가 말하기 힘들다.

내가 이러한 봉준호 감독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작중 흐름이 작위적이지 않고 매우 자연스럽다는 점이다. 이런 황당한 상황에 직면하면 저렇게 행동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흐름이 이어진다.

두번째 이유도 위에서 언급한 자연스러운 흐름과 비슷한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는데, 결말이 매우 현실적이라는 점이다. 억지로 권선징악적 결말을 만들기 위해 주인공 캐릭터에게 갑자기 어마어마한 힘이나 행운을 제공해 준다거나 빌런의 바보같은 실수를 연출하지 않는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에서는 빌런이 승리할 만 하면 그렇게 흘러가도록 놔둔다. 아마도 난 선악의 경계가 모호하거나 선함보다는 강함이 승리하는 영화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이번에 본 기생충도 이러한 흐름을 잘 따른다. 잘나가는 친구에게 과외수업을 의뢰받으면서 시작된 그럴 수 있음직한 이야기가 다시 그럴 수 있음직한 연결로 이어지는데, 계속 이어지다 보니 황당한 상황에 직면해 버린다. 하지만, 계속 그 상황이 만들어진 과정을 지켜본 관객들은 이 상황에 대해서 말도 안된다느니 비현실적이라느니 하는 비판을 할 수가 없다. 매우 자연스럽게 상황이 이렇게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봉준호 감독의 작품을 싫어하는 관객들은 아마도 너무나 현실적인 결말에 대해 거부감을 갖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굳이 현실도 어두운데 이런 걸 영화에서도 봐야 하냐며 기피하는 것일게다. 누군가는 마법사가 지팡이를 휘두르는 것이 비현실적이라 싫다고 느끼지만, 난 선하다는 이유로 약자가 승리하는 것이 더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진다. 비현실적 세계관은 납득하지만, 비현실적 전개는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다.

쓰고보니 기생충의 리뷰를 쓴 것이 아니라 봉준호 감독을 리뷰한 것같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