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폰이 생긴 날

보조금 허용설을 강력히 신뢰하며 때를 기다리던 우리 집안은 노무현 정부의 보조금 불가 발표후 충격에 휩쌓이며 울며 겨자먹기로 비싼 값에 폰을 구입하여야 했다.

결국 우리는 KP-6160을 포기하고 LP-9200을 선택하게 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나의 강력한 압력이 있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동생은 여전히 LP-9300을 고집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집안이 시끄러워 졌겠지. 9300이 더 이쁘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내 동생이 엄마에게 휴대폰을 얻어내는 것은 참 눈물겨운 과정이었다. 우리집은 이상하게도 전화비를 각자가 부담하는 관례가 만들어져서 지불능력이 없는 동생은 그 통화료를 자기의 용돈에서 부담하겠다는 약조를 받은 후에야 휴대폰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이 이상한 관례는 재수생 신분으로서 휴대폰을 얻고자 했던 나로 인해 생겨나 것이며, 난 기계값 등의 모든 비용을 혼자서 부담했기 때문에 엄마는 이것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던 것이다.

아무튼 아빠까지 동원해서 휴대폰을 허락받는데 성공하긴 했지만, 20만원 이하라는 조건이 붙어 이 옵션을 만족하기 위해서 내가 엄청난 시간을 소모해야 했다.

011은 가입비 55,000원때문에 가격을 맞출 수 없었고, 016이냐 019냐에서 어차피 019가 016 기지국 빌려쓰는 상황에서 통화 품질의 차이를 느낄 수 없는 상태이므로 엄마 이름으로 하면 가입비가 면제되는 019로 결정을 보았으며, 그 해당 기계를 LP-9200으로 결정하고, 옥션을 포함한 온갖 인터넷 쇼핑몰을 헤매다가 모바일올( www.moblieall.com )이라는 곳에서 175,000원 + 20,000 + 10,000원에 해결을 했다.

집에 와서 동생은 처음에는 자기가 원하던 폰이 아니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다가 이것저것 기능을 만져보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당연하지. 이때까지 폰없이 얼마나 서러웠겠는가! 남들은 중학교 때부터 가지고 다니는 폰을 대학들어가고도 2달이 다되어가는 때까지 가지지 못했으니...

통화비 절감을 위해서 기본료 9,000원짜리 통화옵션을 선택했더니, 1도수 통화료가 무려 36원이나 되어 거의 받는 용으로 사용할 것 같다. 문자100건을 종량제로 쓸 수 있는 2,000원짜리 부가서비스나 하나 신청해서 쓰라고 할 예정이다.

그 동안 신경쓰고 시간 소모한 걸 생각하면 속이 시원하다. 그런데, 한편으론 내 구형폰과 비교된다. 정말 이렇게 위화감이 조성될 줄은 몰랐다. 벨소리 차이가 상당히 크다. 삐리릭과 딩디딩의 차이랄까? 커커... 그래두 고장날 때까지 쓸거다. 애니콜이니까 고장도 잘 안날꺼고.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