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굔 휴가, 역시 당구장

안굔 휴가때마다 항상 시간이 빗겨가는지라 이번에는 맘먹고 만나기로 하고, 인하동 정모를 1차에서 끝내고 바로 부천으로 달렸다. 직통 타니 꽤 빠르군.

국민은행 골목으로 들어가서 무슨 이코노민지 오코노민지로 오라고 했는데, 몰라서 전화를 거는 순간 이 넘들을 발견! 계속부터 "욱", "욱", "욱" 하고 날 불렀단다. 그걸 못듣고 전화기를 꺼내는 내 행태를 보고 엄청나게 웃던데... 웃겼냐 ㅡㅡ?

옆에 얼굴은 낯이 익은데 영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녀석들 둘이 있었는데, 기억 못하면 미안해서, 그냥 냅다 웃으며 오랜만이라며 악수를 하고나서도 생각이 안난다. 나중에 희환이한테 물어보니 나랑 같은반 된 적이 없었던 애들이다. ㅡㅡ;; 그래도, 우린 별 거리낌없이 단지 부천고라는 이유로 바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순대볶음과 반주 조금 걸치고 나서, 역시 안기연 휴가인 만큼 당구장으로 향했다. VIP당구장이라는 곳을 처음 가봤는데, 지하에 있어서, 예전 아지트를 연상하며 엄청나게 좋아했다. 뭐, 예전 아지트는 300원/10분 이었지. 여기는 주말엔 700/10분이고 평일엔 600/10분이군. 내가 당구장 출입을 삼가는 동안 꽤 올랐다. 커커

처음에는 다섯이 같이 치다가 나중에 자리가 나자 고수들 두명이 다른 다이로 빠져 나가고 나를 포함한 하수들끼리 도토리 키재기를 시작하였다. 공이 하도 잘나와 내가 두번 모두 1등하였다. 내가 당구치다 1등한 경험이 몇 년 만인가! 뭐, 몇년동안 오르지 않는 다마수에 좀 허탈하지만...

당구장을 끝으로 난 도봉산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애들은 또 도봉산가는 나를 보고 웃으며 어이없어 한다. 난 10시 반만 되면 지하철로 뛰어가는 부천판 신데랄라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항상 즐겁다. 이들은 아직 취업걱정도 없고, 군대에서 막 제대하여 다시 사회의 자유로움을 사치스럽게 생각하면서도 서서히 이것들과 친해지고 있다. 반면, 난 사회의 사치스러움 뒤에 숨겨져 있는 암흑에 조금씩 눈을 뜨며 무거운 마음을 어쩔 줄 모르고 있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