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그빌( Dogville )

연극 무대 치고는 조금 넓은 무대에 여러 집들을 표현한 선이 그려져 있고, 그 선 안에서 사람들이 제각각 자신의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문을 여는 것도 배우들이 문이 정말 있는 양 허공에 대고 문여는 시늉을 한다. 영화가 참 신선하게 시작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며 영화를 보고 있다. 그런데, 이 신선함이 계속 지속되면서 언제 진짜 영화로 들어가나...라는 조급함이 몰려온다. 그러다가 제1막이라는 자막이 나온 후에도 계속 이러한 연극 같은 모습이 보여지고나서야, 아! 계속 이런 식으로 나가는구나!라는 것을 눈치채고 만다. 그러면서, 극장안은 하나둘씩 빈의자가 늘어나게 된다.

연극을 그대로 비디오 카메라로 찍어 놓은 듯한, 어떻게 보면 파격적인 이 형태는 산 속의 어느 자그마한 마을에 대한 동경과 그 동경이 나은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할 뿐더러 이런 것들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배신감을 느끼게 만든다. 배신감을 느끼지 않은, 즉, 변칙적인 영화 장르에 조금은 관대한 사람조차 한정적인 공간적 배경에 대해서 당혹스러워 하고 답답함을 호소하며 이에 적응하는데 오랜 시간을 허비하게 한다.

변칙적인 시도에 대한 관객의 어색함을 최대한 줄여 주고자 나레이션을 통한 설명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는데, 실제로, 이 전지적 작가 시점의 나레이션은 영화의 이해를 돕는데 일조한다.

이러한 한정적인 공간적 배경을 통해서 영화를 표현한 것은 실제로도 영화의 공간적 배경이 도그빌이라는 아주 작은 산골 마을에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 도그빌이라는 마을에 들어오고 나오는 일은 있지만, 들어오고 나오는 것들의 목적지 등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정말이지, 바깥 세상을 구경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 나오기는 하지만, 절대로! 도그빌 이외의 곳은 볼 수 없다.

이와 같이, 도그빌이라는 마을은 실질적으로 바깐 세상과 거의 교류가 없는 곳이라고 단정 짓고 있다. 단지, 이들 마을에서 가꾼 사과를 외지로 팔기 위해 나가는 행위가 유일한 교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곳에 갱단에게 쫓기는 한 미모의 여자, 그레이스( Nicole Kiddman )가 등장하게 되면서 평온한 마을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도그빌 이야기를 한 인간이 권력을 얻고 잃는 모습이라고 볼 때, 비로소 도그빌이라는 영화가 나타내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다. 도그빌은 이 도망온 여자에게 있어서 권력자이다. 처음에는 권력을 거부하지만, 한번 권력의 맛을 들인 도그빌은 이 낯선 여자에게 더욱 권력을 사용하고자 하며, 권력 남용에 이르게 된다. 아무리 때묻지 않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권력의 유혹에 빠지게 되면 파멸하게 됨을 보여주려고 애쓰고 있다. 또 다른 권력에 의해서 파멸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정말 통쾌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된다. 그만큼 우리는 도그빌 주민들의 비인간적 측면에 대해서, 다시 말하면 권력 남용에 대해서 분개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피권력자에 대한 애처로움을 느끼게 된다.

니콜 키드먼은 정말 그레이스의 역할에 적임자임을 증명하듯, 훌륭한 연기로 어색한 공간적 배경에 대해서 불만을 가질 기회를 우리에게 빼앗아 간다. 공포에 질린 모습, 실망스러운 모습, 만족스러운 모습, ... 그녀의 클로즈업된 얼굴에 나타난 그녀의 심정은 피권력자 그 자체의 모습이었다.

대중적 인기를 얻을 수 없는 영화이지만, 영화치고는 한정된 공간적 배경에 적응할 수만 있다면, 178분의 긴 상영시간이 지루하지 않을 만큼 그레이스의 생활에 빠져들 것이다. 또한, 당연하다는 듯이 니콜 키드먼의 입을 통해서 뿜어져 나오는 반전은 오랫동안 기다려온 당신을 배신하지 않는다.

이상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