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한문 시간에 영어 교재 팔아 먹은 놈들

늘 그렇듯 아침에 눈을 뜨는 것이 힘들었고, 생활 한문 두 시간이 전부인 수요일은 더욱 대출의 유혹을 가중시켰지만, 마지막 학기, 또 F맞으면 안되니 성실하게 하자는 생각에 부랴부랴 챙겨입고 학교에 갔다.

친구들과 점심을 먹고 들어가기 싫은 생활한문 수업에 임했는데, 칠판 오른쪽 구석에 음성인식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가 씌여 있었고, 자세히 보니, 한문시간에 한다는 듯 보였다. 잘하면 일직 끝나겠지라는 기대와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음성인식이라는 말이 주는 호기심에 기분이 갑자기 좋아졌다.

50분 수업을 한 후에, 강사가 선배들이 음성인식 소프트웨어에 대해서 잠깐 할 얘기가 있다며 앉아 있으라는 이야기를 했고, 난 선배들 중에 음성인식 소프트웨어 개발한 사람이 동아리 하나 만들어서 신입생들 모으려는 것인가보다라는 예상을 하게 되었다.

커피를 한 잔 뽑아들고, 어떤 사람들일까에 대해서 궁금해하고 있는데, 프로젝터에 노트북까지 설치하는 것을 보고, 잘나가는 동아리인가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교적 얌전하게 생긴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가 87학번이며 무슨 소프트웨어 개발을 했는데 옆에 들어온 사람을 이사님이라고 소개한다. 멀리서 왔다나? 다른 사람들이 이 사람에게 상당히 굽신거리는 것을 보며 이 동네 군기가 바짝 들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이 사람의 언변은 무척이나 뛰어났다. 천방지축인 1학년들을 순식간에 제압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이 아저씨들의 목적이 동아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음을 알게 되었고, 점점 상업적인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음성인식 소프트웨어 보다는 영어 학습교재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갔으며 영어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예를 들면서 좀 황당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월드컵 당시 자원봉사자들이 영어를 못했다는 내용을 뉴욕타임즈에 컬럼형식으로 기재했다가 국정원( 국가정보원 )에 끌렸갔다왔다는 이갸기를 비롯해서, 정부지원금을 김대중 정권시절에 5,000만원을 받고, 현정부에서 200억원을 받았다는 이야기까지, 그럴듯하면서도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을 보고, 확실히 장사하러 왔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었다. 문제는 언제 본색을 드러내느냐였는데, 그들은 이에 대해서 매우 신중했다.

영어에 대한 한국 교육의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자신들의 교제가 출충하다는 것을 역설하며 대대로 물려줄 교재라는 말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면서, 이제는 저 자식들이 정말 우리 학교 선배가 맞나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분위기는 이제 이 교재가 얼마이냐에 대한 궁금증을 일으키게 할 만큼 고조되었고, 이제서야 그들은 본색을 들어내었다. 이 교재는 학생들보다는 직장인들에게 한정판( 잘팔리면 또 찍어내면 되지, 왠 한정판? )으로 제공되기 때문에 지금 사지 않으면 기회가 없고, 이제까지 자신들을 도와준 동문들에게 감사하고자 지원해 준다는 허우대 좋은 말로 순진한 1학년들을 현혹한다. 그러면서 57만원짜리이지만 지금 즉시 사면 19만6천원에 지원해 준다며 1학년들에게 판단할 수 있는 시간적 제약을 가하기 시작한다. 벌써, 딱 가격 책정한 것만 봐도 장사치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요즘 취업할 땐 홈페이지 하나씩 제출해야 하는 것 아시지요?라며 2주만에 홈페이지를 만들 수 있게 해주는 소프트웨어를 덤으로 제공해 준다는 말은 나를 어이없게 하기에 충분했다.

한마디 하고 싶은 심정이 극에 달했지만, 워낙에 불의를 보아도 참고 지나치는 성격인데다, 혹시나 정말 우리 학교 선배라면 좀 지나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며, 워낙에 열변을 토해내는 바람에 열심히 하는 영업활동에 대한 존경심이 위의 어이없는 행위들에 대한 분노를 희석시켰으며,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설마 이걸 사는 학생이 있을까라는 생각이었다.

불행이도, 내 예상은 보기좋게 틀리고 말았다. 적어도 10여명의 학생들이 교재를 구입하기 위한 양식을 채우고 있었다. 이것이 어찌된 일이던가! 20만원이라는 돈을 어찌 이렇게 쉽게...

안타까운 마음으로, 떠날까봐 부랴부랴 폼을 제출하는 학생들을 보며 아직 세상물정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가는 마지막까지 한명이라도 더 받으려는 그 자식의 행태를 보면서는 참 졸렬하다는 생각을 했다.

아까 그 얌전하게 생긴 녀석이 마무리를 하며, 문장작법하는 장소가 어디인지를 물어보는 말에, 1학년만 노리는 놈들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정체가 거의다 들어난 것이다. 뉴스에 해마다 보도되는 영어 교재 사기 판매단쯤 되는 듯하다.

벌써 시간은 40분이 훌쩍 넘어갔고, 시간 낭비했다는 생각에 강의실을 나서면서도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그냥 영업활동의 결정판을 직접 목격했다는 것에 의의를 두며 자위했다.

새로지은 정석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닥 계속되는 전화때문에 공부가 안되었던 터, 같은 곳에서 공부하고 있던 지나를 불러내어 스카이라운지에 가서 캔커피 하나씩 마시며( 지나야, 잘마셨다. 그나저나 여기 언제 매점 생기려나... ), 아까 그 이야기를 하니까, 자기도 1학년때 그런 곳에 따라갔다가 안사고 그냥 왔던 적이 있다며, 1학년은 충분히 속을 수 있단다.

그냥 잊고 공부하려고 해도 자꾸만 그 자식들 생각이 나서 공부가 되지 않는다. 나도 속을 뻔 했다는 것 자체가 자존심이 상했고, 강의실을 나와서야 그 녀석들의 악독함을 실감할 수 있었던 내 판던력에 대해서 실망했으며, 선배로서 후배들의 잘못된 구매를 방관했다는 도의적 자책감이 나를 힘들게 했다. 또한, 생활한문 강사는 도대체 왜 그들에게 시간을 내면서 영업활동을 방치했을까에 대한 의문점이 발동하며 이 사람 또한 같은 멤버가 아닐까하는 생각으로 번졌다( 제발 아니길 빈다 ).

이 자식들, 선배를 사칭하여 사기를 치고 다니다니... 그럴리는 없겠지만, 우리 학교 선배면 더 나쁜 놈들이야!! 교재의 질을 떠나서, 장사하러 와서 도움주는 듯한 그 태도, 정말 마음에 안든다.

제발 이거 구매한 삭생들 부모가 현명하게 대처해서 전량 환불했으면 좋겠고, 환불 안되면, 그 교개 가지고 공부 열심히 해서 영어실력 향상시키길 빈다( 근데, 뭐 영어가 교재가 나빠서 안되나... )

OT가서 이런거 속지 말라는 교육같은거 안받나 몰라...

이상욱